어떻게 죽고 싶냐고 물었을 때, 이왕이면 잠든 사이에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죽는 줄도 모르게 고통도 두려움도 없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뜻이었다. 생존을 위해 아득바득 싸우는 상황은 고통스럽다. 특히나 세상이 망하는 아포칼립스 상황에 놓이는 것은 끔찍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세상이 좀비로 망하든, 자연재해로 망하든, 전쟁으로 망하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싸우곤 한다. 픽션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그런 긴장감을 견디기가 너무도 힘겹다. 그런 점에서 김이환의 장편소설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는 밍밍하게 편안했다.
소설의 설정은 단순하다. 언제부터인가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퍼진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잠든 듯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수면 바이러스’라는 별명이 붙는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이 잠들고 일부만이 평소대로 활동한다. 밖에 돌아다니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사람들, 아주 소심한 사람들이다. 신기하게도 소심한 사람들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 남는다. 화자인 ‘강선동’을 비롯해 살아남은 동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욕심을 차리기보다 남의 눈치를 보는 성격이다. 덕분에 이렇다 할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들 우물쭈물하며 괜찮다는 말로 서로 사양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마지막 배급품은 평화롭게 지급된다. 슈퍼마켓을 차지하고 있던 깡패는 “사실 패거리를 나오고 싶었는데 소심해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소심한 사람들은 싸우지 않는 만큼 쉽게 친해지지도 않는다. 생존자끼리 연대감을 형성할 법도 한데, 뜨겁게 의기투합하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나서서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고 해봤자 다들 “시간이 되면…”이라고 어물어물 대답하고 흩어진다. 사실 세상이 망했는데 시간이 안 될 리가 없다. 바쁜 일은 하나도 없지만, 안 친한 사람과 밥 먹기가 괜히 부담스럽다. 딱 잘라 거절하기도 부담스러우니 애매하게 보류하는 것이다. 물론 말을 꺼낸 사람도 소심한 성격이므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심한 사람들의 세상에는 격한 감정이 없다. 이들의 서먹함은 냉장실에 든 얼음처럼 매우 천천히 녹는다.
생각해 보면 소심한 사람은 픽션의 주인공이 되기 힘들다. 새로운 일에 뛰어들지 않고, 위험해 보이면 금방 발을 빼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사건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포칼립스처럼 악착같이 굴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살아남기조차 힘든 것이 뻔하다. 많은 픽션에서 소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기껏해야 조연이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의 세상에서는 소심한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들은 느릿느릿, 우물쭈물, 조심조심 움직인다. 죄다 소심하다 보니 재촉하거나 타박하는 사람도 없다. 앞서가야 할 등장인물들이 천천히 가니 뒤따르는 독자도 느릿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심한 사람들의 속도에 익숙해지고 나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다른 이야기들이 너무 빠르고 격하게 움직였던 건 아닐까. 예의 바르고 조용한 사람들이 맞이하는, 심심하고 미지근한 해피엔딩도 꽤 괜찮지 않을까. 소설이 보여주는 ‘소심함’의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