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형 유전자가위 기술로 '차세대 바이오 총아'로 떠올라

입력
2024.04.01 04:30
11면
<24>생명연 교원 창업기업 '진코어'
김용삼 책임연구원 주도해 2019년 설립
초소형 교정기술 플랫폼 TarGET 개발
171억 유치, 3억5000만 달러 기술 수출
김 대표 "기술 고도화·신약물질 발굴 중"

편집자주

지역경제 활성화는 뿌리기업의 도약에서 시작됩니다.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고군분투하는 전국의 뿌리기업 얘기들을 전합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 UMC연구팀은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실험실에서 이뤄진 성공으로, 실제 환자들에게 적용되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지만, 죽을 때까지 항바이러스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 HIV의 '근본적인 치료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 결과는 이달 27~3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유럽 임상미생물학·전염병학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연구팀이 이용한 유전자가위는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절단해 유전체 교정을 가능하게 하는 인공 제한효소다. 1세대 징크핑거 뉴클레이즈(ZFNs), 2세대 탈렌(TALENs)을 거쳐 현재 3세대 크리스퍼 캐스나인(CRISPR-Cas9)이 개발되는 등 그 기술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진코어는 희소 유전질환을 치료할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는 유전자가위 분야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한국생명공학 유전자교정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던 김용삼(52) 대표 주도로 연구원 교원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 2019년 설립됐다. 대전 생명연과 서울 성모병원 연구동을 오가며 30여 명의 직원들이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진코어는 2012년 처음 개발돼 유전자교정치료제에 널리 쓰이는 크리스퍼-캐스9보다 유용한 유전자가위 기술 등을 토대로 희소 유전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크리스퍼-캐스9은 유전자를 잘라내고 새로 바꾸는 데 최장 수년씩 걸리던 것을 며칠로 줄일 수 있는 데다 여러 군데의 유전자를 동시에 바꿀 수도 있어 유전질환 치료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교정률이 질환별로 편차가 크고, 전달체로 쓰이는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에 실을 수 있는 용량이 제한돼 있다 보니 원하는 곳으로 전달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다.

김 대표는 이런 점에 주목해 생명연 책임연구원 시절 연구원들과 함께 캐스9의 교정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단백질과 AAV에 탑재할 수 있는 더 작은 유전자가위를 만드는 연구에 매진했다. 연구 성과가 서서히 쌓이자 진코어를 설립해 유전자가위 치료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 대표는 "평생 연구만 하다가 유전자가위 관련 산업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기술을 확보하게 돼 창업까지 하게 됐다"며 "고민이 많았지만 '어차피 후회할 것이라면 창업을 한 뒤 하는 게 덜할 것 같다'는 생각도 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진코어를 설립한 뒤 36억 원의 투자를 받아 연구개발에 전력했고, 이듬해 '크리스퍼-CPF1'과 2022년 '크리스퍼-캐스12F1'을 개발해 국내 특허 등록을 했다. 이를 포함한 총 4종의 유전자교정 기술 관련 특허 등록을 마쳤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에 30여건의 특허도 출원했다. 2022년 10월에는 171억 원에 달하는 투자도 유치했다.

이 중 크리스퍼-캐스12F1은 진코어의 주력기술로, 초소형 유전자가위 플랫폼 'TarGET'으로 불린다. 우수한 기술력이 집약된 TarGET은 이른바 대박을 쳤다. 지난해 1월 미국의 한 글로벌 제약사에 3억5,000만 달러(약 4,500여억 원) 규모의 기술 수출을 한 것이다.

김 대표는 "TarGET은 크기가 크리스퍼-캐스9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면서도 일부 질환에서 크리스퍼-캐스9 수준의 교정성공률(20%)을 보는 등 전달률에 있어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며 "기술 수출한 기업에선 현재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 임상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다만 해당 기업이 어느 곳인지는 밝히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이 외에도 현재 3개 유명 기업과 기술 수출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는 치료용 대마의 효능을 강화하는 유전자 교정 연구도 어느 정도 끝냈으며, 이를 토대로 관련 기업들과 공동 연구를 준비 중이다. 또 TarGET을 활용한 '뒤센 근이양증(DMD)', '레버 선천성 흑암시(LCA)' 등을 적응증으로 하는 유전자 교정치료제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있다. 근이양증은 근위축증으로도 불리며, 베커형과 뒤센형이 있는데, 이 중 뒤센형은 가장 빈도가 높은 유전성 질환이다. LCA는 실명을 유발하는 흑암시 중에서도 유전자 결핍에 의해 선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생명연 당시 성과를 토대로 모두가 연구에 매진해 단기간에 투자 유치와 기술 수출을 할 수 있었다"며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유전자를 단순히 잘라내는 수준을 넘어 복원까지 할 수 있는 기술 고도화와 차세대 기술 개발 등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최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