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에서 인문학 위기론이 거세다. 하지만 사실 위기의 인문학은 역사가 오래된 사회적 담론이다. 1996년 전국 인문대학 협의회의 '인문학 제주 선언'을 기점으로 하면 자그마치 28년 동안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 속에 살아왔고 여전히 위기와 함께 살고 있다.
정보화, 첨단화, 지능화를 축으로 급속한 사회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와 '느린 학문'인 인문학의 부정합성이 부각되고, 미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문학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 무용론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많은 논의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위기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인문사회 분야 R&D 국고 지원금은 이공계 분야의 14.5% 수준으로 급감했다. 인문사회 계열의 대입 정원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매년 수십 개의 인문사회 전공학과가 문을 닫고 있다. 2022년 인문계열 취업률은 59.9%로 전체 계열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23년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시작한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HUSS)'이 고사 위기에 처한 인문학의 위기 탈출에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HUSS는 4차 산업혁명, 포스트 코로나 등 사회변화에 따른 문제 해결을 위한 인문사회 기반 융합인재를 대학에서 적극 육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주는 사업이다.
사업 초기에는 디지털, 기후위기, 위험사회, 인구구조 등 거대 사회문제 해결형 인문융합인재 육성이라는 다소 야심 찬 구호 때문에 일부에서 회의적 시선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업 첫해인 지난해 전국 25개교에서 약 3,000여 명 학생이 참여해 열띤 호응을 보였고, 강의 만족도 조사 결과 또한 예상을 크게 웃돌 정도로 조기에 사업이 안착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사업 1차 연도 우수성과 확산을 위한 성과포럼과 연계해 개최한 HUSS 융합캠프에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해커톤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인문학적 성찰과 창의적 구상을 기반으로 최신의 첨단 실용 학문을 접목한다면 인문학 전공자 또한 문제해결 방안을 충분히 도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사업 주관대학 총장의 입장에서 HUSS 사업이야말로 인문사회 기반의 이상적 융합교육 모델이라고 확신한다. 2024년도 HUSS 컨소시엄 공모가 최근 시작되었다. 올해는 지역, 사회구조, 글로벌 공생 등 세 가지 대주제가 추가되었다. 더 많은 대학들이 사업에 참여해 '문송합니다'라는 자조가 사라지고 기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인문사회학적 통찰로 미래를 선도할 자랑스러운 인문사회 융합인재가 양산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