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나 청소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노파심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시대마다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이고 요새는 여기에 '문해력'도 들어간다. 이를테면 고등학생들이 가제(假題), 변호, 출납, 위화감 같은 말들조차 모른다며 문해력 위기가 심각하다는 뉴스도 있었다. 누구는 '가제' 보고 랍스터(바닷가재)냐고 물었다던데, 50대 이상이라면 익숙할 법한 가제(주로 '가제 손수건', 독일어 Gaze)는 거즈(영어 gauze)에 밀려 학생들은 더 모를 것도 같다. 어휘력과 독해력, 문해력이 동의어는 아니고 어휘가 좀 모자랄지라도 문맥 파악이 되기도 하겠으나, 많이 읽으면 어휘가 늘고 어휘력이 좋으면 글을 잘 읽어 소통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 다들 관련이 있다.
한국만이 아니고 기성세대와 20대 미만의 언어적 기준이 달라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현상이 있다. 몇 해 전 뉴질랜드 대입 시험에서 카이사르가 한 말(영어 번역문)에 나온 trivial의 뜻을 몰라서 틀린 고등학생들이 항의를 했다. 퀴즈 등의 trivia(잡학 문제)가 더 나아가 '상식'과 비슷한 뜻으로도 통용되는데, trivial(사소한)이라는 낱말을 잘 몰라서 '중요한'으로 헷갈렸다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자주 사소한 원인에서 중요한 사건이 생긴다."
라틴어: Saepe in bello parvis momentis magni casus intercederent.
영어: Oftentimes in war, events of importance are the result of trivial causes.
말뜻은 '나비효과'와도 비슷한데, 항의한 학생들은 중요한 사건이 대단한 원인에서 생겨야 맞는다고 우겼다. 그런 밋밋한 말이 후대까지 남을 리는 없을 테니, trivial이라는 그리 어렵지 않은 낱말도 모를 정도면 맥락도 잘 읽을 줄 모름을 드러낸다. 출제자들도 설마 trivial을 모를까 싶었겠지만, 국어(즉 그 나라는 영어) 시험이 아니라 역사 시험이므로 small이라는 쉬운 말을 써도 됐을 텐데 괜히 trivial(사소한)이라는 사소한 단어로 탈이 난 것도 같다.
카이사르의 금언은 다의어가 살짝 달리 풀이될 수도 있다. 원래 movimentum의 축약형 momentum은 '움직임'이고 움직이는 단계로서 '순간'이나 '중요함' 또는 그것이 일어나는 '동력, 계기'도 된다. '사건'의 뜻인 casus는 '사고, 재난' 또는 전시에는 '패배'라서, 프랑스어 malheur(불운, 재난, 화)로도 번역된다. '(이기는 듯싶다가도) 눈 깜짝할 새에 질 수도 있다'나 '(잘못하면) 조금만 삐끗해도 큰코다친다'로 풀어도 되겠다. 큰 사고가 찰나의 사소한 실수로도 일어나니 전쟁이든 세상살이든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로는 한국에서 청소년과 20대 문해력이 가장 좋고 나이가 들수록 떨어진다는 결과도 있다. 미디어에서 단편적 현상만 재미로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등학생이 40대만큼 어휘력은 없더라도 문해력이 낮다는 것은 과장이다. 세대마다 익숙한 어휘도 다르다. 문해력이 테스트로만 온전히 평가되기도 어렵고 고려할 점이 많으니, 어느 세대나 국민을 뭉뚱그려 단정하기도 어렵다. 누가 됐든 잘 읽거나 듣지 않고 생각도 안 하고는 못 알아듣겠다고 홱 돌아서 버리는 태도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이 먹을수록 지력이 조금씩 줄고 시대에 발맞추기가 힘들어질 테니, 마냥 손 놓고 있다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중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때그때 나사를 조이고 기름칠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