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나이 74세. 치매 환자인 아버지가 한국 여행 중 사라졌어요, 부탁합니다.”
17일 엑스(X·옛 트위터)에 사정이 급해 보이는 글 하나가 올라왔다. 작성자는 일본인 A씨로 “서울 여행을 떠난 경증 치매 환자 아버지가 이틀째 행방이 묘연하다”며 서툰 한국어로 도움을 청했다. 게시물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8시간 뒤 A씨는 “여러분의 관심 덕분에 무사히 아버지를 찾았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한국에서 길을 잃은 외국인 치매 환자를 불과 8시간 만에 찾은 건 보통 ‘행운’이 아니다. 내국인 치매 실종자도 이렇게 빨리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모든 외국인이 A씨 아버지처럼 운이 좋지는 않다. 관광객, 노동자 등 국내 유입되는 외국인 인구는 계속 늘고 있지만, 실종자 추적은커녕 사건 인지조차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다.
경찰 등에 따르면, 실종자가 15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의 화장실에서 사라지자 함께 관광 온 가족이 경찰에 신고해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사건을 접수한 종로경찰서가 중심이 돼 인상착의와 행적 등을 토대로 일대를 샅샅이 뒤졌고, 폐쇄회로(CC)TV 영상까지 살펴 그가 인천으로 이동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어 지방경찰청과의 공조로 인천의 한 시내에 주저앉아있던 실종자를 발견해 가족에게 무사히 인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경찰관들은 이런 속도전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외국인 실종 수사는 턱없이 정보가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정보도 분산돼 있는 탓에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 입국 외국인 정보는 법무부에서 관리하는데 실종 신고가 들어와도 행선지, 지문, 특이사항 등 자세한 인적사항까지는 수사팀에 공유되지 않아 종일 CCTV를 들여다보며 동선을 따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A씨 아버지의 빠른 발견은 경찰의 기민한 초동대처 덕이 가장 크지만 실종자의 행선지, 인상착의, 병환 등 상세한 정보를 한국에 있던 가족이 수사팀에 실시간 전달한 것도 한몫한 셈이다.
비전문취업(E-9)비자 등을 통해 홀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실종사건은 해결이 더 어렵다. 임시비자를 받아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만큼 주변인들과의 친밀도가 떨어져 탐문수사조차 여의치 않다. 외국인 실종을 아예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도 외국인 실종 사건 및 범죄 피해 통계는 집계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의 실종이나 범죄·사고 피해 소식이 본국의 가족에게 전달되는 일도 드물다. 과거 경기 지역에서 부탄가스 폭발로 숨진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의 시신이 무려 150일 동안 영안실에 방치된 사례도 있다. 그의 시신을 수습한 국내 비영리단체는 가족을 오랫동안 수소문해야 했다. 경기 안산에서 30년째 외국인 이주민들을 돕는 박천응 안산이주민센터 이사는 “아프리카처럼 통신시설이 열악한 나라는 가족의 주소지를 특정하는 자체가 어려워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종자 수사는 신속성이 생명인 만큼 부처 간은 물론 경찰 조직 내 정보의 벽을 허무는 것이 급선무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외국인 실종 사건이 발생하면 입국 정보를 전담하는 출입국관리소와 이들의 문제를 담당하는 외사계, 실종수사팀이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며 “분산된 정보가 속히 하나로 모여야 해결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