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명이 숨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로 러시아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된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전역은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물결로 가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굳은 얼굴로 교회를 찾아 희생자를 애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푸틴 대통령이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면이 담긴 48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영상 속에서 푸틴 대통령은 한 교회를 방문해 예수 그리스도 형상 아래 촛불을 놓은 뒤 세 차례 걸쳐 성호를 그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의 표정은 엄숙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푸틴 대통령이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이들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앞서 22일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로 137명(24일 오후 기준)의 사망자를 포함,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당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사 현장인 크로커스 시티홀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추모 인파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시민들은 장미·카네이션 등을 헌화했고, 인형을 놔두기도 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도 포함돼 있다. 이곳에 놓을 꽃을 가져온 타티아나는 "내 영혼이 울고 있고, 러시아가 울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당신(테러리스트)은 쓰레기다.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힌 메모도 붙어있었다.
추모 분위기는 곳곳에서 확인됐다. 모스크바 '뉴 아르바트 거리'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우리는 애도한다'는 문구와 함께 촛불 그림이 계속 표시됐다. 스포츠 등 여가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뉴스 진행자 등은 검은 옷을 입고 방송에 나서는 것으로 추모에 동참했다. 부상자 치료를 돕고자 헌혈에 동참한 이가 주말에만 4,000명에 달했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는 전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주미 러시아대사관 앞 등 해외에서도 추모 행렬이 이이어졌다.
테러리스트들의 잔혹한 행태가 알려지며 '사형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총기를 들고 공연장에 난입해 관객들을 무차별 사살했다. 러시아는 법적으로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1996년부터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대표는 "사형에 대해 많은 질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기대에 부응하는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죽음에는 죽음으로 (대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