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7월 14일 자 한국일보 1면에는 수십 점의 신라시대 금제 국보급 문화재가 발굴된 특종 기사가 게재됐다. 경주 지역에 산재한 통일신라 이전 대형 고분의 본격적 발굴을 위해, 인근의 작은 고분을 시험 삼아 발굴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초대형 유물이 쏟아져 나온 상황이 한국일보 취재진에 포착된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금관과 희귀 유물이 쏟아진 고분은 경주 황남동 155호 고분. 외형상 크지 않아 보이던 이 고분에서 내관과 외관이 모두 구비된 금관과 금팔찌 2개, 금가락지 10개, 요대, 칼 등 국보급 문화재가 발굴됐다. 당시까지 출토된 금관 중 내관과 외관이 별도로 이루어진 금관이 출토된 건 금령총에서 발굴된 금관에 이어 세 번째에 불과했다. 게다가 4~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금관은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이 특징이었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역대 출토된 신라 금관 중 최고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일보의 금관 발굴 특종은 우연이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 특별지시로 이뤄진 대대적인 경주지역 유적 발굴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경쟁 매체를 압도할 수 있었다. 1971년 이후 경주관광개발계획을 추진하던 박 대통령이 경주에서 가장 큰 규모인 98호 쌍둥이 고분의 발굴 지시를 내렸다. 한국일보는 이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그때까지 발굴 경험이 없었던 우리 고고학자들이 155호 고분을 시험 삼아 발굴키로 한 것에 주목했다. 그해 4월부터 실제 발굴이 시작됐는데, 발굴 진척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한국일보 취재진은 발굴 시작 3개월가량 지난 시점에서 다량의 금제 유물이 출토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역사학계에서는 한국일보의 특종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다. 그 이전 경주지역 문화재 탐사 경쟁에서 앞선 취재력을 과시했던 만큼 한국일보 주요 유물의 발굴을 경쟁지보다 앞서 보도한 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한편 한국일보를 통해 잇따른 국보급 문화재 발굴 사실이 전해지면서, 경쟁 매체의 후속 보도가 이어졌고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 155호 고분에서는 금관뿐만 아니라 ‘말다래’에 그려진 멋진 천마도까지 발견됐는데, 그 이후 해당 고분은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