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가 의무인 이스라엘에서 초정통파 유대교도인 '하레디'의 '병역 면제'를 둘러싼 잡음이 커지고 있다. 베나민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극우 연정 기반인 하레디의 병역 면제를 연장하려 하면서다. 야당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맞서는 전시내각 탈퇴 카드까지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다. 종교를 이유로 '합법적인' 군 면제 혜택을 받는 하레디가 이스라엘 정치권 갈등의 핵으로 부상한 모양새다.
24일(현지시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 등 이스라엘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스라엘 전시 내각에 참여해 온 제2야당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는 이날 "하레디의 병역 면제를 유지하는 정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전시내각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네타냐후 총리가 사실상 하레디의 징집을 계속 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예고하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해당 법안에는 입대하지 않은 하레디 남성이 형사 처벌을 받지 않도록 보장한 내용 등이 포함됐다고 TOI는 전했다.
과거 국방장관을 지냈던 간츠 대표는 "정부의 법안은 심각한 도덕적 실패이자 깊은 내부 균열을 일으킨다"며 "(법안 통과 시) 국경 너머에서 싸우는 전사들의 눈을 보고 군 복무를 연장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병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의무 복무 기간을 기존 32개월에서 3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현 국방장관 역시 오는 26일 내각에 상정될 이 법안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
앞서 이스라엘 대법원이 2017년 9월 하레디의 군 면제를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이들의 군 면제 규정 효력은 오는 27일 만료를 앞두고 있다.
전쟁이 일상화된 이스라엘에서 하레디의 병역 면제는 늘 논란의 중심이었다. 전통적 유대교 율법 연구를 최대 소명으로 여기는 하레디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병역을 면제받았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비극 탓에 사라질 뻔한 유대 정체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주어진 일종의 특혜였다. 하레디 남성 대부분은 직업도 없이 정부 보조금에 기대 유대교 경전 '토라' 읽기 등에 전념한다.
하지만 하레디의 병역 면제를 더 이상 지속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에 갈수록 힘이 실렸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 400명에 불과했던 하레디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영향이 크다. '다산'을 권장하는 교리에 따라 하레디 여성은 평균 6, 7명의 아이를 출산한다. 현재 이스라엘 전체 인구(약 930만 명)의 약 12%인 하레디가 2050년에는 25%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특히 지난해 가자지구 전쟁으로 군 복무 기간 연장까지 추진되자 형평성 논란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로선 이들의 군 면제 특권을 쉽게 빼앗기 힘들다. 하레디 정당을 자처하는 샤스당 등과 연립정부를 수립해 집권을 유지해 온 탓이다. 샤스당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하레디 랍비 이츠하크 요세프는 이달 초 연설에서 "정부가 하레디를 군대로 부르기 시작하면 그들 모두 해외로 떠날 것"이라며 네타냐후 총리를 대놓고 압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