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사라지는 성교육·페미니즘 도서... 왜?

입력
2024.03.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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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도서=음란물" 시민단체 민원 
일부 학교 성교육 도서 폐기 혼선
"성교육 도서 조치해야" 경기교육청 공문
교사들 "성평등 도서 검열 유도" 공분

최근 경기지역 초등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성교육·성평등 관련 도서를 '유해 도서'로 규정해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가 민원을 제기하고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조치를 요구하면서 논란을 가중시키는 모양새다. 학교 현장에서는 특정 집단에서 만든 금서 목록이 압박으로 작용하면서 도서 검열를 유도하고, 학교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부터 일부 보수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 주도로 일부 성교육 도서에 대한 폐기 민원이 경기지역 초등학교에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들 단체의 민원이 잇따르자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1월 관내 초등학교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두 차례 보냈다. 이어 이번 달에도 '(폐기)처리된 도서 집계 목록'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한 차례 더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도서관의 상급 관리기관인 교육청이 '부적절 도서'를 언급한 공문에 이어 이례적으로 '자료 제출'까지 요구하고 나서자 일부 교사를 중심으로 "사실상의 검열"이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사실상 폐기 압박...성평등 도서 검열 유도"

최근 경기도교육청은 일선 초등학교에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운영 현황과 성교육 도서 처리 목록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교육청의 지난해 11월 공문의 후속 조치 차원이다. 당시 공문에서 교육청은 "학교도서관에 비치된 일부 유해한 성교육 도서에 대해 선정성, 동성애 조장 등 도서를 접하는 어린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다수 민원과 도의회 및 국회의 목소리가 있다"며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성교육과 관련된 도서 선정과 운영에 주의를 부탁드리며, 부적절한 도서에 대해서는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협의 후 교육 목적에 적합하게 조치 바란다"고 요청한 바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학교 자율성 침해이자 성평등 도서의 검열과 삭제를 유도하는 것이란 반발 목소리가 높다. 학교도서관진흥법 제10조는 도서 구입과 폐기를 포함한 학교도서관 운영은 각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도서관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지역 초등학교 한 교사는 "특정 단체에서 민원이 집중되는 시기에 상급 기관에서 이를 언급한 공문을 보내고 추후에 처리 목록 양식을 보내 자료 제출까지 요구하면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교육청이 현장의 자율성을 존중하기는커녕 일부 주장에 힘을 싣는 고압적 공문을 보내면서 혼선만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역 시민단체도 비판 한목소리

공문에 "학부모단체, '학교도서관 음란도서' 즉각 폐기 촉구", "도서관 성교육 서적, 선정성 유해성 관리해야"와 같은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된 일부 단체의 '성교육 도서 폐기' 요구 내용을 첨부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해 9~10월까지 한 보수단체가 "청소년 유해도서 분리제거 협조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공문과 함께 148권의 유해 도서 목록을 일선 학교에 보낸 터였다. 이 목록에는 성교육 도서뿐 아니라 젠더·페미니즘 관련 아동·청소년용 도서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일부 학교는 교육청의 공문을 수신한 후 금서 목록에 포함된 도서를 전부 폐기하거나 보관서고로 보내 임시 보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고양여성민우회 등 시민사회단체도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성교육 도서 폐기 목록을 보고하라는 것은 성교육 도서 검열"이라며 도서 목록 제출 통보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경기도교육청은 "공문 어디에도 특정 도서를 언급한 부분이 없고, 폐기를 압박한 것이 아니다"라고 논란에 선을 그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성교육 도서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학교 일선에서 심의를 강화하라는 취지에서 보낸 공문"이라며 "결과 보고 요청도 학교도서관 운영에 대한 현황 조사 차원에서 실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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