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의 '즉시 휴전'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이 22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통과가 무산됐다. 최근 가자지구 민간인 문제를 놓고 이스라엘과 각을 세워온 미국이 직접 결의안을 제출하면서 기대감을 키웠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다.
안보리는 이날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즉각적이고 지속가능한 휴전 촉구 등을 담은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고 밝혔다. 15개 이사국 중 찬성 11개, 반대 3개, 기권 1개국이었다.
채택이 불발된 건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다.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것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당초 이번 표결은 줄곧 이스라엘 편에 서 왔던 미국이 처음으로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결의안 초안에는 "모든 측면에서 민간인을 보호하고, 필수적인 인도적 지원 제공을 허용하며, 인도주의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안보리는) 즉각적·지속적인 휴전이 긴급히 필요하다고 결정한다"고 적혔다. 또 "남은 모든 인질의 석방과 관련한 휴전 확보를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외교적 노력을 명백히 지지한다"고 돼 있다.
그간 미국은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세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근 등 가자지구 민간인에 대한 인도주의 위기를 놓고 국제사회 비판이 커지자 태도를 바꿔 이스라엘을 비판해 온 게 미국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가자 주민들의 마지막 피란처인 라파에서 지상전을 강행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직접 결의안을 제출하고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날 표결을 시작하기 전부터 "과도하게 정치화됐다"며 결의안을 깎아내리는 등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미국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통제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결의안 초안에서) 전형적인 위선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표결 직후 서방 진영은 러시아와 중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바바라 우드워드 유엔 주재 영국대사는 양국을 향해 "깊은 실망"을 표한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즉시 휴전을 요구하는 새로운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다시 작성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