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마데우스'(1985)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에 대한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의 감탄, 절망, 분노를 추적한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천재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성 높은 영화로 평가받으며 제57회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수상했다.
내가 중학생이던 1986년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본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은 왠지 모르게 아련하게 남아있다. 어릴 적 그림이 좋았고 조각이 좋아 미술을 하겠다고 하자 내 부모님은 펄쩍 뛰었다. 특히 영화 '까미유 끌로델'(1989) 관람 이후 반대는 더 거세졌다.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제자이자 연인이었고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1980년대의 어른들에게 예술가는 대체로 낯선 사람들이었다. 별종, 천재, 광인, 무당 같아야 ‘그 바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들 했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조각가가 되고 싶다고? 저 카미유 클로델처럼 힘들게 살 수도 있어. 예술가의 삶이 평범할 수 없잖아!"라는 걱정을 들었다.
실기 고사를 불과 두 달 앞둔 어느 날 아무도 없는 화실에서 친구가 그려 놓고 간 그림 한 장을 보다가 눈물을 쏟았다. 친구의 그림은 어떤 열정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였다. 친구는 그림 그리기 싫다며 빈둥대곤 했지만 화실에서 늘 1등을 차지했다. 친구의 그림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리에 머물겠구나'라고.
스스로 예술가가 되기보다 예술가를 빛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천재는 캔버스 그 자체가 되지만, 그런 천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사람은 액자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게 미술이론을 전공한 후 전시기획자, 미술교육자로서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알리는 일을 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20여 년이 지나 40대에 접어들자 '저 높은 곳의 위대하고 고고한 예술'은 설렘보다는 피곤함으로 다가왔다.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으며 온갖 철학용어로 꾸며낸 미술비평은 하릴없는 잘난 척으로 느껴졌다. 예술과 예술가가 무엇인지 고민하기에는 일상이 너무 바쁘다.
예술과 예술가들이 어느덧 저 멀리 있음을 느꼈던 날 생각했다. 나는 왜 예술과 멀어졌나. 그때부터 미술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나는 예술가를 지나치게 특별한 존재로 오해했구나.
예술가에 대한 이미지는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대중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영화 ‘서편제'(1993)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야! 이눔아! 쌀이 나오고 밥이 나와야 소리를 하냐? 지 소리에 지가 미쳐가지고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 좋고 황금보다 좋은 것이 소리 속 판이여. 이눔아!” 소리꾼 유봉은 소리를 가르치던 수양딸 송화의 눈을 일부러 멀게 만들 정도로 소리의 완성에 집착한다. 누군가는 이 장면에서 예술가는 저래야 한다며 감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 장면은 인권 유린과 아동 학대 현장이다.
조선 후기 화가 오원 장승업(1843~1897)을 다룬 영화 ‘취화선’(2002)은 또 어떤가. 영화에서 장승업은 칭찬을 받아도 벌컥 화를 내며 그림을 찢고 급기야는 직접 불가마니로 들어가 백자 굽는 땔감이 된 광인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와 ‘까미유 끌로델’의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천재들은 천부 재능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으며 위대한 작품만 남았다. 예술가는 광인 같은 신선인가.
미술사학자 베레나 크리커는 저서 '예술가란 무엇인가(휴머니스트 발행)'에서 통시적 관점에서 예술가 개념을 추적한다. 그는 과거의 기술적, 수공예적 예술가 개념이 르네상스를 거치며 ‘천재 예술가’로 전환됐다고 봤다.
오늘날 천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지니어스(Genius)의 어원은 지니(Genie)인데, 로마 신화 속 반신(半神)에서 유래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튀어나오는 요정 지니가 이 지니어스에서 온 말이다. 지니어스는 예술가가 천상의 작품을 만들도록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지식인들은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며 신성한 영적 존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창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본주의의 시작이며 창의성은 개인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 이때부터 예술가는 지니어스가 없어도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이후 근대와 현대로 넘어오면서 전통을 거부하고 자유를 외치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예술가 이미지가 부각됐다. 천부적 재능을 가진 선구자적 존재와 예술가를 중심으로 서양미술사가 쓰였다. 20세기 공교육을 통해 서양미술사가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보편적인 예술가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반면 아시아 지역의 전통적 예술가 개념은 서구권과는 차이가 있다. 철학적 주제로 그림을 남긴 문인 화가들은 서구의 보편적 예술가 이미지에 보다 가깝지만, 동양의 그림과 조각은 오래도록 수공예 형태로 지속됐고 기술장인의 영역이었다.
뒤늦게 문호를 개방한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의 예술을 설명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술 용어부터 이해해야 했다. 1950년대에 겨우 공교육의 기틀이 마련된 한국의 미술교육자들은 서둘러 서구식 예술이론을 소화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교실에서 한국미술이나 동양예술보다는 서양미술을 좀 더 많이 만났다. 천부적 재능을 가진 선구자적 이미지의 예술가들에 익숙하게 된 이유다.
한국 미술교육은 세계 예술계의 변화에 발맞추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했다. 한국전쟁 중에도 천막 교실에서 미술수업을 했던 1세대,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렸던 2세대,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기 시작한 3세대,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지금의 4세대에 이르기까지 70년이 지났다. 현재 한국의 예술과 문화산업 역량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한국 예술교육이 숨 가쁜 성장으로 여러 성과를 거둔 건 맞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예술가를 특수하고 특별하게 여긴다. 여전히 많은 학부모가 "우리 아이 그림 잘 그리니까 미술대학 갈 수 있겠죠?"라고 묻는다. 그러나 21세기의 미술 세계는 소묘 실력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전 세계의 미술대학들도 그림 실력으로만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대학인 홍익대학이 실기고사를 폐지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이 사실을 모르는 학부모들이 많다. "얘가 예술가 기질이 있어서인지 도통 말을 안 들어요"라고 하소연하는 부모들도 종종 있다. 그 말에는 예술은 뭔가 특수하고 특별하다는 인식이 숨겨져 있다.
'예술가는 평범한 우리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위험한 까닭은 뭘까. 성범죄에 연루된 예술가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원래 예술가들이 그렇지 뭐” 하는 푸념을 적잖이 들었다. 시인이니까 여성에게 무례하고, 화가니까 반사회적 행동을 하고, 항상 1등만 하는 운동선수니까 조금 일탈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고의 저변에 깔린 고정관념을 돌아보자. 예술가가 예외적이고 특수하다는 인식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형성된 서구적 개념으로 이미 20세기 말에 그 유통기한을 다했다.
20세기 중반부터 지식인들은 서구사회의 남성중심적 역사 해석을 철회하기 시작했고, 창작자보다는 감상자가 주인공이 되는 예술이론이 부상했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작품을 만든 창작자보다 작품을 읽고 보는 감상자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움베르토 에코 등 유럽 지식인들의 호응을 얻었고, 예술작품이란 결론과 해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열린 텍스트’라는 인식을 보편화시켰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반 대중이 더 중요해지면서 작품을 창조하는 천재 예술가에 대한 신화가 서서히 걷혔다. 미술학 연구자들도 예술의 신화 깨기에 나섰다. 미국의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는 “이제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시대”라고 정의했고, 독일의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은 ‘미술사의 종말’을 선언하며 미술사 서술방식의 반성을 요구했다. 고급 예술의 장벽이 낮아지고, 예술가라는 호칭도 폭넓게 사용됐다. 21세기 초연결시대에 접어들면서 예술가의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복잡하다. 유일한 정의가 있다면 “예술가는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일을 하는 전문 직업인”일 것이다. 예술가는 군인, 의사, 교사 등과 다를 바 없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필요한 직업 윤리와 업무 역량을 갖춰야 하는 한 분야의 전문가다.
사랑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서 실망했다면, 그것이 사랑일까. 예술가에 대한 환상도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특별하지 않다고 애정을 지워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술 분야 진로를 고민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날 때면 오래전 화실에서 치기 어린 눈물을 쏟던 추억이 떠오른다. 21세기 예술가로 살아갈 아이들이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는 눈물이다. 오래전 예술가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좋지만 앞으로 예술가로 살아갈 아이들은 '고독하고 고통스럽고 불행하고 힘들게' 작품을 만들지 않길 바란다.
2022년 7월부터 한국일보에 ‘맛있게 그림보기’를 연재했고,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연재를 처음 시작하면서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이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다." 숨 가쁘게 바쁜 일상 속에서 만나는 그림 한 장과 예술 작품 하나를 맛보자. 생명과 건강을 위해 맛있게 먹는 한 끼 식사처럼 맛있게 본 그림으로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