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 '스포츠 메카'로 인구 3만명 이상 유지한다

입력
2024.03.23 10:00
13면
2010년 스포츠산업 육성 위한 전담 부서 신설
지난해 전지훈련과 전국대회 개최로 방문객 약 10만명 달해
보은군, 3년 안에 체육관ㆍ운동장 2곳 추가 건설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지난 11일 충북 보은군에 위치한 공설운동장과 야구장. 대회를 목전에 둔 축구팀과 야구팀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16일 개막한 ‘전국 여자축구선수권대회(WK 대회) 2024’를 앞둔 수원FC위민 팀과 다음 달 4일 열리는 대학 축구리그인 ‘대학 U리그’에 참가하는 제주국제대학교 야구팀이다.

이 팀들은 매년 전지훈련을 위해 보은군을 찾는다. 제주국제대 야구팀의 경우엔 1년 중 6개월 가까이를 보은군에서 보낸다. 전국대회 경기가 제주가 아닌 수도권 등 다른 지자체에서 열리다 보니 보은군을 아예 제2의 연고지로 택한 것이다. 고동현 제주국제대 감독은 “제주는 바람이 많고 기상 변화도 심해 연습하기가 어렵다”라며 “보은군은 인조잔디 야구장과 실내연습장, 헬스장 등 전문 스포츠시설을 갖춰 전지훈련지로 국내에서 최고라 본다”고 평했다.

인구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은군은 전지훈련과 전국대회 개최가 가능한 스포츠산업단지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보은군은 행정안전부가 올해 2월 고시한 국내 인구감소 지역 89곳에 포함된다. 보은군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 10만 명에 달했던 보은군 인구는 2020년 3만2,912명, 올해 3만906명(2월 기준)으로 감소했다. 10년 후인 2034년에는 3만 명 아래(2만6,571명)로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추산된다.



선수 50명 방문하면 주민등록인구 1명 증가 효과

보은군은 인구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전국 지자체 중 최고 수준의 스포츠산업단지 육성을 선택했다. 선수와 관람객 등 외부 인구를 끌어들여 지역 내 머무르는 생활인구(주민등록인구 포함)를 2034년까지 3만 명 이상으로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생활인구는 지역에 체류하며 실질적인 활력을 높이는 이들까지 인구로 보는 개념이다.

스포츠산업을 통해 생활인구가 증가하면 주민등록인구를 늘리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는 게 보은군의 분석이다. 보은군에 따르면 주민 1인당 연간 지역 내 소비지출액(신용카드 기준)은 446만 원이다. 전지훈련팀 유치와 전국대회 개최 등으로 보은군을 찾는 선수들의 1인당 평균 소비액은 약 9만 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들 50명(450만 원)이 보은군을 찾는다면 연간 주민등록인구 1명(446만 원)이 늘어나는 효과를 갖는다는 계산이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스포츠시설 총망라

보은군에 들어서 있는 스포츠시설들은 거의 모든 종목을 망라한다. '보은스포츠파크'에는 보은공설운동장을 중심으로 도보 5~10분 거리에 야구장(2곳)과 축구장(3곳), 농구장, 테니스장, 씨름장, 풋살장 등 국내 경기 개최가 가능한 규모의 시설들과 보조육상훈련장, 실내야구연습장 등 각종 훈련장이 집중돼 있다. 이날 공설운동장에서 청주의 대성중학교 남자 축구팀과 연습시합을 준비 중이던 박길영 수원FC위민 축구팀 감독은 “경남 하동군에서 전지훈련을 하다가 4년 전부터는 매년 보은군으로 온다”라며 “지자체 중에 천연잔디 축구장을 갖춘 곳은 흔치 않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보은군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전지훈련 목적으로만 325개 팀(3만6,289명)이 방문했고, 전국대회는 30건(6만613명)이 개최됐다. 이런 스포츠산업을 통해 지난해 보은군을 찾은 방문객은 총 9만6,902명으로, 선수 50명인 연간 주민등록인구 1명을 늘린다는 보은군의 계산대로라면 주민등록인구가 1,938명 증가한 셈이다.


올해에도 이곳에선 ‘제1차 전국 유소년 야구대회’와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 대학야구 U-리그’ 등 31개의 전국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달 한 달 동안 보은군에 전지훈련을 온 팀도 여자 17세 국가대표 축구팀과 세팍타크로 국가대표 등 15팀 520여 명에 달한다. 안성민 보은군 스포츠산업과 주무관은 “전국 군 단위 지자체 중 이 정도 규모의 전국대회와 전지훈련 팀을 수용하는 건 보은군이 유일할 것”이라며 “강원FC와 안양FC 같은 프로축구팀도 최근엔 보은군에 전지훈련을 온다”고 소개했다.


초고령사회 진입한 보은군에 유소년 학생들 많아지자 분위기도 '활짝'

보은군의 스포츠산업 정책에 주민들의 호응도 높다. 2020년 기준 보은군은 주민등록인구 3만2,476명 중 30%(1만1,170명) 가까이가 만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다. 그런데 초ㆍ중ㆍ고 유소년과 대학교 젊은 선수들이 매년 보은군을 찾다 보니 지역 분위기에 활기가 돈다는 반응이다. 시내에서 만난 보은군 주민인 박영인(가명ㆍ70)씨는 “예전에는 애들을 볼 기회가 적고 노인들만 많아 지역 분위기 자체가 침침했다”라며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이 단체로 와서 식사도 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고 말했다.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크다. 보은군 스포츠산업단지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인 속리산 종합버스터미널 인근에 모인 숙박업소들과 식당들엔 활기가 넘쳐 보였다. ‘육상부ㆍ야구부ㆍ축구부 동계 전지훈련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린 호텔 등 환영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곳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신광봉(61) 속리산숙박업 대표는 “관광객들이 인근 속리산을 방문해도 음식을 포장해 와 당일치기로 왔다 가는 경우가 많아 상인들에게 도움이 별로 안 됐다"며 “하지만 보은군에서 스포츠산업을 육성한 뒤로는 전지훈련팀이나 대회 관계자들이 장기간 숙박도 하고 수십 명이 단체로 식당을 이용해 상권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여름엔 전국 평균기온 대비 3, 4도 정도 낮아 훈련에 최적

보은군이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스포츠산업을 택한 건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과 기후, 숙박 인프라 등에서 강점을 지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한가운데 위치한 입지가 장점이다. 부산까지도 승용차 3시간 이내면 도착할 수 있고 해발 400~500m에 위치해 여름이면 평균기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섭씨 3, 4도 정도 낮은 서늘한 기후로 훈련하기에 적합하다.

특히 1970년대부터 국립공원인 속리산이 수학여행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면서 보은군에 숙박업이 발달한 점도 유리한 조건이다. 김홍석 보은군 스포츠산업과 주무관은 “보은군은 하루 4,000명 수용이 가능한 숙박시설을 갖췄다”라며 “다른 지자체들이 보은군을 따라 하지 못하는 건 숙박 인프라 조성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제대회와 외국 전지훈련팀도 유치할 것"

보은군에 스포츠 인프라 조성의 씨앗이 뿌려진 때는 2006년이다. 예산 92억 원을 투입해 건설한 공설운동장에는 8레인 400m 거리의 원형 트랙과 함께 가로 100m, 세로 70m 규격에 관중 6,000여 명 동시 수용이 가능한 천연잔디 축구장이 마련됐다. 또한 인근에 146억 원을 들여 수영장과 1,000석 규모의 실내체육관이 마련된 ‘국민체육센터’도 지었다. 2008년엔 49억 원을 들여 인조잔디 야구장 2곳을 지었다.

보은군은 이 시설들을 기반으로 2010년 스포츠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로 결정, 그해 스포츠 전담 부서인 ‘전지훈련팀’을 신설했다. 2016년에는 단일조직이던 전지훈련팀을 4개팀 16명 규모의 스포츠산업과로 확대했다. 2020년에는 94억 원을 들여 헬스장과 농구·배구 등이 가능한 다목적체육관(2,302㎡)이 들어선 결초보은체육관을 완공했고, 현재도 야구시합이 가능한 다목적종합운동장(2025년 준공 예정)과 볼링장ㆍ실내체육관 등이 들어서는 다목적체육관(2027년 준공 예정)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투자 덕택에 2010년 64개 팀(2,000여 명) 규모에 불과했던 보은군을 찾는 전지훈련팀은 2019년 551개 팀(5만7,277명)으로 수십 배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에 따라 △2020년 734개 팀(3만5,075명) △2021년 181개 팀(2만1,701명) 등으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2022년(286개 팀·3만6,123명)부터 다시 반등하고 있다. 김용호 보은군 미래농촌전략실 주무관은 “궁극적으로는 국내 규모를 넘어서 국제대회와 외국 전지훈련팀을 유치하는 게 목표”라며 “보은군이 우리나라의 ‘스포츠 메카’로 자리 잡는다면 인구감소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보은= 김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