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필리핀, 일본이 다음 달 사상 처음으로 ‘3국 정상 협의체’를 출범한다. 미·일과 밀착해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에 맞서려는 필리핀과, 동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동남아시아까지 반경을 넓히며 대(對)중국 포위망을 더욱 촘촘히 짜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19일(현지시간) 필리핀 말라카낭(대통령궁)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이날 오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만났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갈수록 거세지는 중국 공세에 맞서 필리핀과 공동 대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블링컨 장관과 동행한 미 국무부 관계자는 회담에 앞서 “미국과 필리핀 간 상호 방위 협정을 논의하고, 남중국해상에서 항행의 자유를 강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필리핀 외교부도 “이번 만남이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블링컨 장관의 필리핀 방문은 다음 달로 예정된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의 사전 작업 성격이 짙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음 달 1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마르코스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정상회의를 한다. 당초 기시다 총리의 국빈방문이 예정돼 있었는데, 이 일정에 맞춰 마르코스 대통령도 미국을 방문하기로 하면서 3국 정상회의가 성사됐다.
백악관은 “깊은 역사적 우호 관계, 견고하게 성장하는 경제 관계,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의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공동 비전에 기반한 3자 동반자 관계를 진전시킬 것”이라면서 “미국·일본·필리핀의 철통같은 동맹을 재확인하겠다”고 말했다.
3국 정상 협의체 출범은 중국 견제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오랜 동맹인 한국, 일본과 미국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의로 안보 협력 틀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번번이 부딪치는 필리핀을 협력체로 끌어들여, 중국 견제망을 동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까지 확대하려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필리핀과 중국의 해상 충돌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회담인 만큼, 미국이 동맹국을 겨냥한 중국의 몽니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전달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선박에 물 대포를 쏘는 등 물리적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초에도 스플래틀리(중국명 난사) 군도 세컨드 토머스 암초 부근에서 보급 임무를 수행하던 필리핀 함정이 중국 해경선과 부딪혀 선체가 손상되고 선원들이 부상을 입었다.
일본 역시 필리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기자회견에서 “필리핀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동맹국이자, 우리나라와 인접한 해양 국가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내달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필리핀을 준(準)동맹국으로 격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필리핀 입장에서도 미국, 일본과의 안보 협력은 중국의 공세에 보다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카드다. 레나토 크루즈 카스트로 필리핀 데라살라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3자 정상회의는 필리핀이 일본을 가장 가까운 군사 동맹국으로 끌어들여 국방 협력과 역량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