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참패 재연' 위기감이 임계점에 다다르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이종섭 주호주대사 즉각 소환 및 귀국'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거취 결단' 카드를 꺼내들었다. 막말 논란에 휩싸였던 도태우 장예찬 후보 공천을 취소하며 여당발 고비를 한 차례 넘겼지만, 잇따른 '용산발 리스크' 대응에 머뭇거리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내부의 위기감은 17일 오전 열린 첫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때부터 감지됐다. 나경원 전 의원은 "이번 선거를 관통하는 프레임은 정권 심판론도, 야당 심판론도 아닌 정치 심판론"이라고 지적했고, 안철수 의원도 "부적절한 막말과 시대착오적 망언에 대해선 읍참마속의 결단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모두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표심을 좌우할 중도층을 겨냥한 발언이다.
수도권 선거에 나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나 전 의원과 안 의원의 발언은 최근 움직임이 시작된 중도층 지지율 흐름과 무관치 않다. 한국갤럽 3월 첫째 주 조사에서 중도층 32%가 국민의힘을 지지해 민주당(29%)과 엇비슷했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만인 2주 차 조사에선 국민의힘 지지율이 24%로 추락해 민주당(33%)에 크게 뒤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21대 총선에서 지역구마다 표차가 적었지만 수도권 참패를 막지 못했다"며 "그만큼 중도 표심이 중요하고, 도태우·장예찬 후보를 읍참마속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절박함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위원장의 위기감은 최근 불거진 이종섭 주호주대사 출국 논란과 황 수석 언론인 테러 발언 논란 등 '용산발 리스크'까지 이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자칫 막말 논란보다 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당 내부에서 제기됐고, 실제 야당에서는 '이종섭 특별검사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선대위 비공개 사전회의에서는 이 대사 논란과 관련, '인사권자가 있는 용산에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이후 한 위원장은 저녁 퇴근 길에 이종섭 주호주대사 즉각 소환과 황 수석 거취 결단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이를 두고 당 내부에서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 이후 당정 관계에 부담을 느낀 한 위원장이지만, 총선 위기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물론 '이 대사 소환조사 및 귀국'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압박하는 의미도 있는 만큼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사건 관련 공수처의 조사 지연을 지적해온 대통령실 입장과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황 수석 자진 사퇴 요구엔 '기자 테러' 발언 논란과 관련해 전날 이뤄진 사과로는 불충분하다는 뜻이 담겨 있어 대통령실과의 갈등도 예상되는 대목이다. 다만 대통령실도 총선을 앞두고 여권의 악재 수습에 힘을 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한 위원장의 결단을 앞당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모두 죽는다. 대통령실도 대승적 판단을 한다는 생각을 한 위원장이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나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