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젊을 땐 저혈압인데 왜 60대 되면 고혈압 될까?

입력
2024.03.17 08:40
19면
[헬스 프리즘]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60대 중반 여성 K씨. 2년 전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있다. 그는 “젊을 때는 저혈압이었는데 왜 60대에 뒤늦게 고혈압이 생겼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고혈압은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 위험 요인 1위 질환이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률이 한때 높았고, 암·치매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고혈압은 여전히 인간 건강을 위협하는 주원인이다.

고혈압 발병 원인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노화, 흡연, 과음, 운동 부족, 과도한 소금 섭취, 유전 등이 꼽힌다.

국민건강통계(2022년)의 연령별 고혈압 발생률을 보면 남성은 20대 6.7%, 30대 13.1%, 40대 28.7%, 50대 41.6%, 60대 53.6%, 70대 이상 64.1%다.

여성은 20대 1.7%, 30대 3.9%, 40대 11.2%, 50대 25.2%, 60대 44.5%, 70대 이상 71.9%이다. 남녀 모두 나이 들수록 고혈압이 증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남성과 여성의 고혈압에 발생 추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40대에는 남성 고혈압 발생률이 여성보다 2.6배 높다. 이 차이는 50대에는 1.7배, 60대에는 1.2배로 줄고, 70대에는 오히려 여성 고혈압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여성 고혈압 발생률이 젊을 때는 낮다가 나이 들면서 뚜렷하게 증가하는 이유가 뭘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게 여성호르몬 영향이다. 여성들은 50세쯤 폐경을 전후로 고혈압 발생률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여성호르몬이 어떻게 고혈압 발생에 관여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관련된 연구 결과가 있다. 실험실에서 고혈압이 없던 암컷 쥐의 난소를 제거하자 고혈압이 생긴 것이 확인됐다. 난소는 생식에 연관된 성호르몬을 분비할 뿐 혈압과 관련 없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쥐의 난소를 없앴을 뿐인데 고혈압이 발생했을까. 연구팀은 암컷 쥐의 성호르몬 증감이 나트륨의 피부 저장 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풀이했다.

짜게 먹어 혈액 속 나트륨이 너무 많아지면 물을 많이 들이켜게 하거나 세포의 물을 혈관 속으로 끌어와 혈관 속 혈액량이 증가해 고혈압을 일으킨다.

만일 혈액 속 나트륨을 피부로 옮겨 저장할 수 있다면 혈중 교환 가능한 나트륨 함량이 낮아져 고혈압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이 동물 실험의 의미다. 이를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하기는 이르지만, 고혈압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여성호르몬이 혈중 나트륨을 피부로 옮겨 저장하는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진 않아 여성호르몬과 나트륨 피부 저장 작용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성호르몬 감소는 몸의 여러 변화를 초래하는데 나트륨 처리 능력 저하도 그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호르몬이 미네랄 처리에 작용하는 다른 사례도 있다.

혈중 칼슘 농도가 떨어지면 부갑상샘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뼈에서 칼슘을 꺼내 혈중 칼슘 농도를 높인다. 나트륨을 피부에 저장하는 원리가 자세히 밝혀지면 더 나은 고혈압 치료법이 나올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는 싱겁게 먹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