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채 '빙빙'…전국 곳곳 수백억짜리 '아이'가 늘고 있다

입력
2024.03.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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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EYE·대관람차) 랜드마크 조성 열풍

‘아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미 태어난 ‘속초아이’, ‘사천아이’, ‘광주빅아이’부터 곧 태어날 예정인 ‘서울트윈아이’, ‘영덕아이’, ‘세종아이’, ‘제천청풍아이’까지. 빼어난 경관을 가진 전국 산하 곳곳에서 이들의 잉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많은 아이는 다 어디서 온 걸까? 지난 2000년 개관한 영국 런던 템스강변의 대관람차 ‘런던아이(London Eye)’는 매년 3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24년 전 런던의 이 성공 사례를 모방한 아류 격 아이(Eye)들이 이제 와 한반도에서 잇따라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 ‘새로운 랜드마크 부상’, ‘지역 경제 활성화 모델’.

앞다퉈 대관람차 유치 경쟁에 뛰어든 지자체의 보도자료마다 공통으로 발견되는 문구들이다. 이들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이미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출렁다리, 케이블카 등 관광 시설물 건립 열풍과 같은 맥락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가 단기 성과를 낼 수 있는 관광 시설물을 도입해 흥행에 성공하면, 다른 지자체는 이를 ‘벤치마킹’해 비슷한 시설을 조금 더 큰 규모로 따라 만든다. 시민들의 관심이 새로운 시설로 옮겨가면 민간사업자나 지자체는 인근에 다른 새로운 시설물을 지어 올린다. 이 패턴은 반복된다. 출렁다리나 케이블카, 대관람차가 한 장소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 결과로 아름다웠던 자연경관은 인공 랜드마크들로 가득 채워진다. 도시의 정체성과 차별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랜드마크의 본질을 따져본다면 너도나도 똑같은 상징물(ㅇㅇ아이)을 도입하는 현 상황은 의아해진다.

서울시는 지난해 오세훈 시장의 역점 사업인 ‘그레이트한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 마포 한강변에 지름 180m 규모의 대관람차 ‘트윈아이’ 조성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사업비는 9,102억 원으로 책정됐다. 대관람차 사업을 진행 중인 지자체는 서울을 포함해 7곳에 이른다. 세종시는 금강변에 호텔과 대관람차를 조합한 시설물(가칭 ‘세종아이’)을, 충남 보령시는 민간 자본 205억 원을 투자받아 원산도에 ‘선셋 대관람차’를, 충북 제천시는 청풍호 인근에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등에 이어 사업비 100억 원 규모의 대관람차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호남에서는 전남 여수시가 여수예술랜드 내 주차장 인근에 사업비 150억 원을 들여 90m 높이의 대관람차를 도입한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영남에서는 경북 영덕군이 사업비 400억 원을 투입해 90m 높이의 대관람차 ‘영덕아이’를, 대구 달성구는 화원관광지에 100억 원가량의 사업비를 들여 100m 높이 규모의 대관람차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강원 춘천시는 의암호 수변에 대관람차를 조성하는 사업을 민간 주도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시기에 경쟁적으로 들어서는 대관람차의 사업성(지속가능성)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지난 4일과 11일 두 차례 닷새 동안 본지가 취재한 전국 각지의 관람차 12곳 대부분은 텅 빈 채로 돌아가고 있었다. 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아예 운영이 중단된 경우도 있었다. 비성수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침체의 정도는 심각했다. 그나마 성공 사례로 꼽히는 속초아이 또한 작동이 멈춰 있었는데, 발걸음을 돌리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지속해서 보였다. 속초아이는 지난 2022년 개장 첫해에 관광객 100만 명이 다녀가며 흥행했지만, 인허가 과정에서 중대한 위법 사항이 확인되며 시설물 해체 결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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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하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