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제조업체의 인력부족 쓰나미

입력
2024.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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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주시에서 열린 학회에서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경영학과 교수가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느 제조업 중심 도시에서 그 지역 인사노무담당자 모임이 열렸다. 모임이 끝난 뒤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그 건배사가 '자, 무'였다고 한다. '자, 무'란 '자, 먹어(마셔)'라는 말의 경상도 방언이다. 그런데 이 건배사의 진짜 의미는 "닥치고, 자동화와 무인화"라는 것이다. 이 건배사는 지역의 제조업체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동화와 무인화를 통해 채용이 어려워진 현실에 대응해 보겠다는 것이다.

또 한 명의 발표자는 제주도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제주도에 11월에 오면 하루에 4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한다. 낮에는 귤을 따고 밤에는 오징어잡이 배를 타면 4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육체를 써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수가 대폭 줄었다. 그 때문에 제주도는 최근 몇 년 동안의 수익을 보장해 주면서 폐선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벌써 100개가 넘는 어선이 폐업했다고 한다. 이미 제주에서도 어부들의 다수는 외국인 노동자다.

또 다른 연구자는 중소제조업 인력 부족의 원인과 특성을 분석하는 사례조사를 발표했다. 이 발표자에 따르면 중소제조업에서 인력채용 공고를 내면 50대만 지원을 한다고 한다. 중소제조업 사장의 시간을 가장 많이 빼앗는 업무가 채용이며, 대부분의 기업에서 채용에 성공하는 데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있고 심지어 6개월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인력 부족을 해결해 주는 주된 인력 소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숙련 부족도 심각한 현상이다. 핵심 숙련인력의 숙련 형성기간이 길고 숙련인력으로 성장해갈 청년층 노동자들의 채용이 어렵기 때문에 숙련 부족 문제가 중소기업들에서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지역 노동시장 수급 상황을 평가한 또 다른 발표자에 따르면, 제조 현장직의 경우 모든 지역에서 구직비중보다 구인비중이 크다. 이러한 현상은 청년들의 제조 현장직 기피 현상에 주로 기인한다. 제조업 중 숙련도가 높지 않고, 반복업무가 많은 단순직의 경우 자동화를 정책적으로 장려·추진할 필요가 있고, 화학, 금속, 기계 관련 직종의 핵심 기술이 다음 세대로 잘 이전될 수 있도록 기업들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 연구자의 정책 제언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러나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인력 부족의 쓰나미가 제조 현장에 밀어닥치고 있다. 젊은 생산직 인력들은 코로나19 때 물류 산업 및 배달업 등으로 많이 옮겨갔다. 중소제조업의 생산능력 감소는 해당 기업뿐 아니라, 원청기업의 생산 차질로 이어져 제조업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는 제조업에서 만성화되고 있는 인력 부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E-9' 및 'H-2' 비자를 통한 고용허가제의 사업장별 고용한도를 2배 이상 늘리고 쿼터를 더 추가했다. 또한 숙련기능인력 도입을 위해 특정 비자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의 쿼터를 확대했다. 스마트 공장 등 제조업의 고도화 지원 사업도 하고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지방 사업체 취업자를 대상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해 주는 청년 정책 등 다양한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