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항 거래' 피라미드 조직까지... 학원 다녀야 할 이유 있었다

입력
2024.03.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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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문항 돈 받고 판 교사들, 피라미드 사교육 카르텔 뿌리 뽑아야

학교 중간·기말고사 문제나 수능 모의고사 문항들이 학원 일타강사 등 사교육 업체에 넘어가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한 교원은 8명을 포섭해 소위 ‘문항공급조직’을 구성, 2,000여 개의 문제를 만들어 넘기고 6억6,000만 원을 수수했다. 교감이 이를 주도한 경우, 35명의 현직 교원이 피라미드처럼 참여한 곳, 단톡방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사례도 있었다. 감사원이 56명을 경찰에 수사 요청한 만큼 이참에 사교육 카르텔을 뿌리 뽑아야 한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 지문이 EBS 교재 및 사설 모의고사와 중복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도 이런 구조에서 가능했다. 중복을 검증해야 할 평가원이 이의신청에도 논란을 우려해 조직적 은폐와 묵살로 일관한 건 더 어이없다. 현직 대학 입학사정관이 사교육 업체에 취업한 것도 교육계의 도덕 불감증과 학원가의 거대 자본 탐욕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이처럼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가 이익공동체가 된 상황에선 학원을 가야만 시험을 잘 볼 수밖에 없다. 학원비를 줄일 길 없으니, 가계엔 큰 부담이다. 14일 발표될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도 2022년(26조 원)보다 급증할 게 분명하다. 이러니 가계가 소비할 돈이 없어 내수가 부진하고 젊은 층의 출산 기피에도 영향을 준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일부 일탈 교사와 학원만 쳐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순 없다. 사교육 카르텔이 건재한 건 여전히 우리 사회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학벌사회인 데 기인한다. 부동산 자산과 소득 격차 등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며 대학 입시는 사실상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길이 됐다. 자식이 자신의 뒷바라지 부족으로 뒤처지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부모들이 학원에 ‘올인’하는 걸 마냥 나무랄 수도 없다. 불법 사교육 카르텔을 발본색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면서 학벌 지상주의와 양극화를 극복하는 데도 힘을 쓰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함께 모색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