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기자보다 기사를 더 잘 쓸까. 지금도 몇몇 언론사에선 간단명료한 수치나 사실만으로 짧고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기사에 AI 시스템을 활용한다. 그러나 발로 뛰는 심층취재를 거쳐 깊이 있는 분석과 비판적 시각, 현실적인 대안 등을 담는 기획기사는 아직 인간 기자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어려운 수학 문제도 풀고 예술 작품까지 창작해내는 AI가 기사는 얼마나 잘 쓸지 궁금했다.
취재팀은 ‘AI 시대, 노동의 지각변동’ 기획시리즈를 준비하는 동안 확보한 자료들과 다양한 인터뷰 내용을 AI에게 제공하고 기사를 쓰라고 시켜봤다. AI에 한국일보 기자라는 ‘인격’을 부여하면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과정은 전문가들 도움을 받았다. GPT-4와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이 적용된 AI 시스템은 하루 만에 200자 원고지 9매 분량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속도 면에선 사람 기자보다 월등하다고 보기 어렵다.
AI가 내놓은 기사는 문법이나 문장이 매끄러워 언뜻 잘 정리된 글처럼 보였다. 취재팀은 이걸 경력 20년 이상의 고참 기자들에게 데스킹을 요청해 봤다. 기사를 출고하기 전 오류를 바로잡고 품질을 높이는 과정(데스킹)을 거치는 사람 기자들의 일상적인 방식과 동일하게 말이다. 그랬더니 곳곳에서 구멍이 드러났다. 사람 기자라면 다시 써오라는 지시를 받았을 법했다.
전문가들은 고참 기자들이 지적한 AI 기사의 문제점 중 상당 부분은 좀 더 정교하고 구체적인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핵심을 압축하고 가치 판단을 내리고 논지를 세우는 등 인간 기자의 핵심 능력을 따라잡을 만큼 AI가 발전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내다봤다. AI 기자가 언제쯤 얼마나 사람 기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일할 수 있게 되느냐는 결국 인간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AI가 일을 더 잘하게 될까 봐 심난한 직업은 기자 말고도 많다. AI의 발전을 억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만큼, 중요한 건 기술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AI가 잘하는 것과 사람이 잘하는 걸 구분해 일을 분담하고, AI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AI 때문에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전략적으로 AI와 공존할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문제는 이런 대응이 어떤 직업에선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어떤 직업에선 어렵다는 점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직업군은 정부와 기업의 정책에 영향을 미쳐 자신들과 관련된 AI 기술의 도입을 원하는 만큼 늦추거나 AI 활용 방향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 반면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직업군은 AI 도입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하게 피해를 입어도 목소리를 내기조차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의료 영상을 단 몇 분 만에 판독하는 AI가 나와도 최종 진단은 의사의 손을 거치도록 해두면 AI는 의사의 진료를 위한 도구에 머물 수 있다. 반면 AI 챗봇이 고도화해 효율성이 향상됐다는 이유로 금융업계 콜센터의 비정규직 상담원들은 지난해 이미 회사로부터 갑작스런 해고 통지를 받았다. AI 때문에 직업에 대한 편견이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설득력을 얻는다.
AI가 직장에서 예상보다 빨리 ‘동료’ 혹은 ‘경쟁자’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첨단을 향해 내달릴수록 노동의 가치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율주행 택시에 불을 지르면서까지 AI에 저항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가 대체해도 괜찮은 일자리는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