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만 가면 행방불명"…최소 9마리 유기동물 데려간 뒤 잠적한 남성

입력
2024.03.09 14:00
경찰,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고발장 접수
유기견 소망이, 임시보호 하루 만에 사망
공론화하자 "나도 거기 보냈다" 제보 빗발쳐
입양→연락 두절 반복…전화하니 '없는 번호'
"입양처 일원화로 마구잡이 입양 막아야"


"제가 임시 보호할 수 있어요. 연락주세요."

지난달 중순, 5개월 된 강아지 '소망이'의 임시 보호자에게 유기동물 플랫폼 포인핸드를 통해 강아지를 데려가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소망이는 충북의 한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 예정이던 강아지로, 동물권 활동가들이 데려와 보호 중이었다. 본인을 경기 파주에 사는 20대 남성이라고 소개한 A씨는 '소득도 충분하고 강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같은 달 14일 서울에서 보호자를 만나 소망이를 데려갔다. 성격이 순한 강아지라 잘 지낼 수 있으리라고 구조자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소망이는 하루 만에 사체로 돌아왔다. A씨는 소망이가 자신을 물어서 '실수로' 목을 졸라 죽였다고 했다. 사체를 수습하러 찾아간 A씨의 집에서 소망이는 쓰레기봉투에 담겨 있었다.

구조자 측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건을 공론화하자마자 "나도 A씨에게 유기견, 유기묘를 입양 보냈다"는 제보가 빗발쳤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4달간 A씨와 동일한 이름, 주소, 외모의 인물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된 동물만 9마리다. 소망이를 제외한 8마리 모두 현재 행방불명이다.

순한 강아지, 고양이만 골라 입양

9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A씨에게 동물을 입양 보낸 뒤 연락 두절돼 정황상 학대가 의심된다는 내용의 고발장이 지난달 26일 경기 파주경찰서에 접수됐다. 경찰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A씨를 불러 조사했다. A씨는 "동물을 너무 많이 데려와 죽여서 일일이 기억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A씨의 증거인멸을 우려해 체포 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가장 먼저 파악된 입양 사례는 지난해 11월 보낸 유기묘다. 같은 해 12월에 강아지 2마리, 올해 1월 고양이 2마리와 강아지 2마리, 지난달 고양이 1마리와 강아지 1마리가 A씨에게 입양을 갔다. 같은 기간 A씨로부터 입양 요청을 받았지만 보내지 않았다는 제보도 여러 건 있었다. 심지어 소망이가 죽은 이후인 지난달 20일 A씨는 각각 다른 사람에게 유기견, 유기묘 입양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A씨 소유로 알려진 SNS 계정엔 지난해 11월보다 앞서 입양된 동물들도 있어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A씨는 주로 유기동물의 임시 보호나 입양을 신청했다. 다루기 편한 '착한' 개체만 노렸다는 게 분양자들 주장이다. 입양 경험을 묻자 A씨는"고양이를 길렀는데 병이 들어 죽었다"고 했다가 "키워본 적이 없다"고 하는 등 때에 따라 말을 바꿨다. 또 1인 가구지만 수입이 일정하고 여유시간이 있어 반려동물을 키울 여건이 된다고 설득했다.

보호자 대부분은 동물을 보낸 뒤 하루 이틀 만에 A씨와 연락이 끊겼다.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취하면 "잃어버렸다"고 변명했다. 소망이의 경우에도 A씨는 처음엔 "산책을 시키다 강아지가 도망갔다"고 둘러댔다. 경위를 캐묻자 그제서야 "목욕시킨 뒤 강아지가 손을 물길래 떼려고 하다가 실수로 죽였다"고 했다. 그러나 소망이 사체를 가지러 A씨 집에 갔던 구조자는 "(A씨에게) 물려서 생긴 걸로 보이는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고 기억했다. 이전에 A씨가 입양해갔다던 다른 동물들도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A씨는 휴대전화 번호를 여러 개 쓰며 입양 이력을 들키지 않으려는 치밀함도 보였다고 한다. 올해 1월 A씨에게 유기묘를 보낸 B씨는 "입양 조건이 고양이 상태를 주기적으로 알려주는 거였지만 며칠 만에 잠적하더니 번호를 바꿨다"고 전했다. B씨가 A씨를 상대로 이달 중순 유체동산 인도 소송을 건 뒤에야 A씨는 "사실 친구에게 고양이를 보여주려다 잃어버렸다"고 회신했다. A씨에게 유기견 2마리를 입양 보냈다는 C씨도 "사건이 공론화되고 나서 급하게 전화했는데 없는 번호라고 떴다"고 밝혔다. 본보도 A씨의 2개 번호로 연락을 취했지만 답은 받지 못했다.

동물을 A씨에게 보낸 이전 보호자들은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실종 신고를 띄운 사람들도 있다. C씨는 "A씨를 직접 만나 30분 정도 입양 상담까지 하고 보낸 터라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린 강아지를 사지로 내몬 것 같아 힘들다"고 울먹였다. B씨도 "열사병, 구내염으로 죽어가던 고양이를 어렵게 구조한 거라 (A씨에게) '평생 가족'으로 생각하고 키우겠다는 약속도 받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한탄했다.

"쇼핑하듯 입양…입양처 일원화하고 학대 전력 조회해야"

반려견, 반려묘를 무분별하게 입양해 학대하는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21~2022년 강원 춘천에선 한 20대가 어린 유기견 등 강아지 8마리를 데려와 상습 학대하고 이 중 한 마리는 잔인하게 죽였다. 2020~2021년 전북 군산에선 40대 남성이 푸들 품종 강아지를 21마리 입양한 뒤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이번 사건과 비슷하게 이전 보호자가 SNS에 "입양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공론화한 덕분에 수사가 시작됐다. 이 남성은 지난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현행법만으론 무작위 입양을 관리하기 어렵다. 특히 유기동물은 워낙 수가 많아 입양처를 꼼꼼히 따지기 힘든 게 현실이다. 지자체 보호소에 들어간 지 10일 뒤부턴 안락사 대기 명단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2022년 파악된 유실·유기 동물은 11만2,226마리로, 이 중 안락사가 1만9,065건(17.0%)에 달했다. 전년(1만8,406건)보다 600건가량 늘어난 숫자다.

전문가들은 마구잡이식 입양을 할 수 없도록 입양처를 일원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현재는 지자체 보호소, 펫숍, 가정 분양 등 경로가 다양해 검증을 피하기 쉽다. 박주연 동물권 연구 변호사 단체 PNR 공동대표는 "마치 쇼핑하는 것처럼 한 입양처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 가서 입양할 수 있어 동물학대 재발을 방지하기 어렵다"며 "입양처가 보호소로 일원화되면 입양 이력 등을 확인해 여건을 꼼꼼히 따지는 게 가능해질 수 있다"고 했다.

동물학대범은 동물 소유를 일정 기간 제한해야 한단 지적도 있다. 현재 동물보호소의 운영지침에 입양 희망자의 '동물학대 범죄 이력을 조회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보호소 직원이 이력을 조회할 권한이 없다. 신주운 카라 정책변화팀장은 "동물학대범의 동물 소유를 제한하는 방향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2022년 발의됐지만 법무부 반대로 무산됐다"며 "학대 이후 일정 기간이라도 동물을 키울 수 없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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