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일부 역내 국가와의 해양 영토분쟁이 가열되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 있는 '중국-아세안 남중국해 행동 준칙(Code of Conduct)'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올해 1월 10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봉봉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안보협력과 공동순찰에 합의했다. 1월 30일 마르코스 대통령과 보 반 트엉 베트남 주석의 정상회담에서도 해안경비대 협력 등 해양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2월 23일에는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과 호주 리처드 말스 국방장관이 2~3개월 안에 새로운 방위협정을 체결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런 양자 협력 강화는 그들이 중심이 되는 소다자 해양안보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 국가의 소다자 해양안보 협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2004년 '말라카 해협 순찰'을 창설하였고, 태국이 2008년부터 합류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이 2017년 '3자협력 의정서'를 체결하고 '술라해 3국 순찰'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다양한 이유로 정체됐던 아세안 차원의 안보협력이 소다자 협력으로 활성화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아세안은 동남아시아 10개국의 연합체이다. 조만간 동티모르가 정식 회원국이 되면 11개국으로 늘어나게 된다. 동남아 국가들은 상대적인 약소국이기에 연합체를 구성하고,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기치로 강대국 사이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또 연합체의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 '아세안 컨센서스',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해 왔다. 그러한 아세안의 응집력이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경합이 가열되면서 도전받고 있다. 아세안 내에서 친중과 친미 국가의 대립은 민감한 이슈에 대한 '아세안 컨센서스' 도출을 어렵게 한다. 미얀마 사태와 같은 아세안 내부문제 해결에서도 내정 불간섭 원칙은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 따라 아세안 차원의 협력이 어려운 이슈에서 '아세안 방식'의 고수보다는 소수의 관련 국가가 중심이 되는 소다자적 접근을 선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양자 협력 증진 추세가 소다자 안보협력을 추동할 가능성이 큰 이유이다. 그러한 소다자적 접근이 정체된 아세안 안보협력의 보완제가 될지, 아니면 대체재가 될지는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