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 유전병으로 20대 중반 세상을 떠난 매츠 스틴. 유품을 정리하던 아버지는 컴퓨터에서 아들의 다른 이름을 발견했다. 이벨린 레드무어 혹은 제롬 워커. 아들이 하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 이름이었다. 온라인 친구들에게도 부고를 전하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 각지의 친구들이 핀란드로 날아왔다. "이건 그냥 화면(screen)이 아니라 관문(gateway)"이라던 아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게 됐다.
마케팅 정보서비스기업 '레이저 피시'의 설문조사에서 Z세대 응답자들은 게임을 두고 이렇게 대답했다 한다. '게임에서는 누구나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더 나 다워질 수 있다'라고. 화면 바깥에서는 차이 나고 차별받을지 몰라도 모두가 다 동등한 온라인에서라면 자기가 들인 시간과 노력으로 그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스틴도 그러했을 것이고, 한달음에 장례식에 달려온 이들도 그런 점에 공감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하나의 스쳐가는 미담 혹은 그래봤자 무슨 소용인지 모를 얘기로만 들렸다면, 당신은 확실히 기성세대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이제 인터넷을 통해 스크린으로 모두 연결된 게 당연한 시대, 온라인 디폴트(Online Default) 시대다. 머리 처박고 하루 종일 해 봐야 뭐 하는지 모를 '저 짓'이, 그들에겐 온전한 하나의 세계이자 정체성이 된 지 오래다. 게임도 매한가지다. 아이들은 게임 자체를 한판 재밌게 놀고 끝인 게 아니라 소셜 미디어로 쓴다. 그렇기에 "혼자 하는 솔로 게임이나 살벌하고 빡빡한 게임보다 가볍게 소통하며 노는 게임을 선호"한다.
예전의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컴퓨터에 친숙하고 비교적 능숙하게 쓸 줄 아는 정도였다면, 온라인 디폴트 시대의 아이들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을 아예 알지 못한다. "내 마음의 30%쯤은 구글, 20%쯤은 애플로 구성돼 있다"고 농담하는 인지과학자 데이비드 차머스는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세계를 '확장된 마음'이라 부른다. 내 마음은 나의 뇌에서 스크린으로 연장되어 있다.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아예 지금을 '온라인 사이보그의 시대'로 규정한다. 종교학자까지 나서서 "삶은 곧 게임"이라고 하는 판국이다.
정보통신(IT) 업계 기획자이자 창업자로 살아온 저자가 쓴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는 이런 얘기들이 한가득이다. 저자인 김지윤 디지털 에이전시 ‘스텔러스’ 대표의 문제의식은 한 가지다. 온라인 디폴트 시대의 아이들이 학교를 거쳐 사회에 쏟아져 나올 텐데, 우리가 할 것이라곤 겨우 '돈'과 '흉'밖에 없느냐다.
돈 얘기야 넘쳐난다. 2010년대 이후 출생자를 뜻하는 알파세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와 합쳐 '잘파(Z+알파)'세대란 말도 나온 지 오래다. 마케팅 쪽에선 무슨 말이든 만들어내서라도 어떻게든 갖다 붙여 쓸 예정이다. 흉도 매한가지다. 매끄러운 화면에 대한 터치가 구체적 접촉을 대체하면서 인간성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철학적 비평에서부터 저놈의 PC를 반드시 박살 내리라는 학부모들의 1차원적이고 즉각적 반응까지, 목록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각종 자료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통계적으로 한국인은 한평생 약 34년을 인터넷에서 보낸다. 3세부터 9세 아동의 인터넷 이용률은 91%가 넘는다. 게임 이용률은 2022년 74.4%에 도달했고, 자녀와 함께 게임하는 부모는 59.3%에 이른다. 아무도 부정 못 할 사실이다.
남은 건 그러면 무한긍정뿐인가. 어디에나 명암은 있다. 온라인 디폴트 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걸 다 느껴버린 것 같다"는 무력감이다. 원하는 걸 온라인에서 다 찾아보고, 알 수 있다 보니 이제 새삼스러운 것이 없어진, 진부한 세상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기성세대라면 온라인을 끊어버리는 문제만이 아니라 이 무력감을 경이로움으로 바꿔줄 수 있는 경험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온라인 디폴트 세계에 대한 종합 보고서에 가까운 이 책을 통해 그 모색을 고민해 보자 제안해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