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끝없는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외교'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 강화에 주력하는 것은 물론, 북일 정상회담 개최 의지도 강하게 드러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 탓에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외교적 성과를 내 지지율 반등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인 셈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기시다 총리가 4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미일 정상회담을 한다"며 "4월 11일에는 미국 의회 초대를 받아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 총리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건 2015년 미국을 국빈 방문한 아베 신조 전 총리 이후 9년 만이다.
기시다 총리의 방미 목적은 겉으로는 '미일 동맹 재확인'이다. 하야시 장관이 "국제사회가 여러 과제에 직면한 지금이야말로 미일 간 강한 결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다. 그러나 속내는 따로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고려해 누가 당선되더라도 지금의 미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리 '보험'에 들려는 포석이다.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굳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할 가능성도 고려한 것이다.
방미 일정에서 이 같은 계산을 엿볼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국빈 방미 기간을 내달 9~14일로 조율 중인데, 노스캐롤라이나주(州)에 들르는 일정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스캐롤라이나는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가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짓는 곳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미국 지방 방문 일정은 '혹시 모를 트럼프 당선'을 의식한 것"이라며 "미국 배터리 산업을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한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트럼프에게) 일본 기업이 미국 경제에 공헌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의미"라고 짚었다. 교도통신도 "트럼프가 재임 시절 일본을 향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문제 삼은 만큼, 그의 재집권을 대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 주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미국뿐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재설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북한이 띄운 '일본 총리 평양 방문'을 실현할 경우,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 이후 '22년 만의 북일 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어서다. 기시다 총리는 4일 총리 관저에서 북한납치피해자가족모임과 만나 "리더끼리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쌍방이 밝은 미래를 그리려면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며 북일 정상회담 개최 의욕을 거듭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