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차 업계에서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 충전하는 대신 완충된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과거 미리 충전해 둔 휴대전화 배터리를 교체하던 것처럼 전기차 배터리를 쓴다면 전기차 가격 인하, 충전 시간 단축, 배터리 재사용 등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교체식 배터리 전기차 시장이 꾸준히 성장 중인 반면 국내는 완성차, 배터리 제조사를 중심으로 사업성을 가늠해 보는 단계다. 다만 전문가들은 배터리 교체식 전기차가 일반화하기까지는 기술 표준화, 스테이션 보급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사내 독립기업 쿠루(KooRoo)가 전기 이륜차(오토바이 등)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BSS·Battery Swapping Station)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쿠루의 BSS 사업은 전기 이륜차의 배터리를 다 쓰면 완충된 배터리로 쉽게 교환할 수 있게 배터리 교환소를 제공한다. 쿠루는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고도 교환할 수 있고 일반 이륜차보다 차량 운영 비용이 적게 든다고 강조한다.
쿠루는 지난해 말부터 우아한청년들(배달의민족의 물류서비스),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 업체들과 시범 서비스 체험단을 운영했는데 참여 운전자 중 약 70%가 유료 회원 전환을 희망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고 덧붙였다. 쿠루는 2025년까지 수도권에 스테이션 1,000대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기차 솔루션 스타트업 '피트인'을 통해 이달 중 경기 안양시 명학역 인근 1,785㎡(약 540평) 땅에 '피트인 스테이션 안양'을 짓고 전기차 배터리 교체 사업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전기 트럭이나 택시가 배터리 교환소로 들어서면 로봇이 차량을 들어 올려 차량 하부 배터리를 떼어내고 충전된 새 배터리를 갈아 끼워주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전기 차량은 5분 만에 출발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현재 초급속 충전기인 350킬로와트(㎾)급 충전기는 방전 상태에서 80% 충전하기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정부도 적극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6일 '제1차 모빌리티 혁신위원회'를 열고 모빌리티 분야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 여덟 건을 심의·의결했다. 이 중 현대차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 제작 사업도 들어 있다. 규제샌드박스는 신기술로 개발된 제품·서비스가 현행법을 어겨 실현이 어려우면 규제를 한시적으로 면제·유예해 주는 제도다.
현대차는 배터리를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전기차를 시험적으로 만들 계획이다. 기아는 지난해부터 법인 택시업체들과 손잡고 전기차만 산 뒤 배터리는 따로 월간 이용료만 내고 빌려 쓰는 배터리 구독 서비스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앞서가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니오는 2018년 중국 내 첫 번째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을 만들었고 2,000여 개 교환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 CATL은 최근 중국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과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 교체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배터리 비용이 차 값의 35~40%를 차지해 전기차 가격이 높은 데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보급이 더딘 이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배터리 교체형 전기차 사업은 자동차 회사별로 배터리 규격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전기차 배터리 교환소를 주유소만큼 세우기 어려운 점 등이 걸림돌이라고 짚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중국은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라 전기차 배터리 교체 사업이 가능했다"며 "최근 우리나라도 기술 개발과 표준화 등이 진행 중이라 사업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배터리 교체형 전기차가 일반인에게 보급되기보단 택시나 택배, 차량 공유업체처럼 대형 운수 업체를 중심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