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 트럭 참변' 만든 건... 가자 통치 '큰 그림' 못 짠 이스라엘 탓"

입력
2024.03.04 19:30
14면
지난달 말 구호 트럭에 몰렸다 100여 명 사망
NYT "북부 리더십 공백이 근본 원인" 지적
이·하 협상 지지부진... 이 내부 갈등도 고조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나불시 교차로'에서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에 몰려 들었다가 100여 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우리가 총을 쏴서 죽은 게 아니라 압사 때문에 죽은 것"이라며 책임을 부인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통치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게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 나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북부 지역 통제권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로부터 빼앗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공공질서 및 치안 유지, 리더십 공백 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 대혼란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주민 통치 계획 안 세워"

하마스 측인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나불시 참사로 최소 112명이 사망하고, 700여 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은 3일 "초기 조사 결과 주민 사망 및 부상의 주요 원인은 압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NYT는 중동 정세 분석가 및 구호 활동가 인터뷰를 토대로 참사 근본 원인이 이스라엘에 있다고 봤다.

NYT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월 초 가자지구 북부에서 하마스를 사실상 해체한 후, 하마스가 다시 세력을 형성하지 않도록 감시·감독하는 데만 치중했을 뿐 하마스라는 통치 세력이 사라진 뒤 주민들을 어떻게 통치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은 마련하지 않았다. 가자지구를 관리하던 기존 관리들과의 협업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후 팔레스타인 통치 방안을 두고 미국 등 국제사회와 갈등을 거듭하는 상황과도 연관돼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정은 '팔레스타인 통치는 팔레스타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국제사회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가자지구 북부에 남아있는 주민 약 30만 명은 '대혼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중앙 통치기구 부재로 구호 물품 보급은 물론 길거리에 널린 쓰레기·오물을 치우는 등의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도 제공되지 않았다. 법·질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약탈 및 폭력이 만연해졌다.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에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것도 이러한 구조적 공백에 기인했다.

스콧 앤더슨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가자지구 부국장은 "비유하자면 가자지구 리더십은 '지하'(땅굴)에 있기 때문에 (지상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리더십 공백을 메울 수는 없다"며 "이는 절망과 공포를 키워 대형 참사가 일어나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NYT에 말했다. 전직 이스라엘 정보관이었던 마이클 밀스타인은 "(나불시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은 이스라엘이 장기적·현실적 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꼬집었다.


결론 안 나는 이·하 휴전 협상

이스라엘·하마스 간 인질 석방 및 휴전 협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협상을 중재하는 이집트의 관영 매체인 알카히라 뉴스는 3일 하마스 협상 대표단이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했지만, 이스라엘은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하마스가 '석방 인질 명단'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협상 대표단을 카이로에 파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마스도 인질 석방 조건으로 이스라엘이 거부하는 '영구 휴전'을 줄곧 요구하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은 보도했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인 야히야 신와르가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최소 일주일간 종적을 감춘 것도 협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의 치 라이벌인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민통합당 대표가 미국을 방문하면서 네타냐후 총리 심기도 불편해졌다. 간츠 총리가 미국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등을 두루 만나며 '정부 대표급' 일정을 소화하는 데 대해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총리는 한 명뿐"이라고 쏘아붙였다. 간츠 대표의 방미는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관계가 전쟁 관련 이견으로 껄끄러워진 가운데 이뤄졌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