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대선에서 재대결이 유력한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텍사스주(州) 남부 국경 지역을 한날 동시에 방문해 '말의 전쟁'을 벌였다. 대선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불법 이민 문제와 관련, 서로의 국경 정책 실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치열한 책임 공방을 펼친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500㎞ 거리를 사이에 두고 국경 결투가 열렸다"며 "불법 이민 문제가 올해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텍사스 최남단 브라운스빌을 찾아 국경수비대(USBP) 관계자들의 브리핑을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0억 달러(약 27조 원) 규모의 국경 통제 강화 방안을 포함한 '안보 패키지 예산안'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반대로 무산된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 문제로 정치를 하고 (공화당) 의원들에게 법안을 막으라고 하는 대신, 나와 함께 하라"며 '트럼프 책임론'을 앞세웠다.
브라운스빌은 지난 10년 가까이 대규모 불법 입국으로 몸살을 앓았던 곳이다.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불법 월경자가 대폭 증가했다며 공격해 왔고, 수세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들어서야 '불법 이민 강경 대응' 방침으로 선회한 상황이다. 그는 국경 강화 예산을 담은 해당 법안 처리를 촉구하며 "역대 가장 엄격하고 효과적인 법이다. 이제 행동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지지 않았다. 브라운스빌에서 북서쪽으로 약 520㎞ 떨어진 텍사스주 국경도시 이글패스를 방문, 불법 이주민에 대해 "이것은 조 바이든의 침공"이라며 전매특허인 호통과 독설을 쏟아냈다. 이글패스는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불법 이민자 대응과 관련해 연방정부와 빚고 있는 갈등의 현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을 공언하는 등 엄격한 반이민 정책을 펼쳤고, 이번 대선에서도 불법 이민자 문제 해결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건 상태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은 '바이든 이주자'의 범죄로 넘쳐난다"며 이민자를 범죄와 연결 짓기도 했다. 최근 조지아대에서 발생한 22세 대학생 살해사건 용의자가 베네수엘라 출신 불법 이주민으로 드러난 사실을 거론하며 "이민자들은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오는 범죄자이자 테러리스트"라며 "끔찍하다"고 말했다.
불법 이민 이슈는 이미 올해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됐다. 지난달 미국 성인 1,016명을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1가량(28%)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이민 문제를 꼽았다. 보수·진보 간 진영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날 텍사스 서부연방법원은 불법 이민자를 주 차원에서 체포·구금할 수 있도록 한 텍사스주 이민법(SB4)에 대해 '시행 보류'를 명령했는데, 이는 소송을 낸 바이든 행정부 손을 들어준 결정이었다. 애벗 주지사는 항소 방침을 밝혔다.
이민 문제 대응과 관련, 현재 유권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미 마르게트대 로스쿨이 지난달 5~15일 882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과반(53%)이 '이민 및 국경 보안' 문제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잘 처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택한 비율은 25%에 그쳤다. WP는 "바이든과 트럼프, 두 대선 후보가 이민 문제를 두고 남부 국경에서 치른 비난전은 향후 혹독한 대선 캠페인의 미리 보기 격"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