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물보호단체 라이프로부터 서울대 떠돌이 개의 치료비 지원을 고민하는 학생의 연락을 전해 받았다. 사연은 이러했다. 이 학교 산업공학과 학생인 박예성씨는 지난달 초 교내 계단 옆 화단에서 옆구리에 뭔가 박힌 채 쓰러져 있는 개를 발견하고 바로 옆 서울대 동물병원 응급실에 데려가 치료를 맡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옆구리에 박힌 것은 마취총이었다. 개는 큰 상처는 없었지만 엑스레이와 컴퓨터 단층촬영(CT) 등의 검사와 마취총으로 인한 근육손상 치료를 하면서 250만 원가량의 병원비가 나왔고, 박씨는 고민 끝에 동물단체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박씨는 "7년째 반려견을 기르고 있는 반려인으로서 위험에 처한 개를 보고 무조건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급한 대로 산업공학과를 줄여 개에게 '산공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했다.
사정을 들은 라이프는 포획 과정에서 마취총을 맞고 도망친 이른바 '들개'로 추정했다. 서울에서 보호소 내 유실∙유기동물을 구조해 입양을 보내는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과 서울시를 통해 확인한 결과, 포획 도중 놓친 떠돌이 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은 구조자가 입양의 뜻이 있다면 치료비와 임시보호비 등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대 동물병원이 들개임을 확인하고 관악구에 연락을 취했고, 관악구는 들개를 유실∙유기동물에 준해 처리한다는 원칙에 따라 산공이를 지정 보호소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서울대 동물병원과 보호소의 인계 과정에서 산공이가 탈출해버린 것이다. 산공이의 치료비와 임시보호처를 알아보고 있던 박씨는 나중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대 동물병원과 관악구가 산공이의 치료비를 지원키로 한 점은 다행이지만 산공이 사례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산공이 사례를 접한 뒤, 6년 전 서울 월드컵공원을 떠돌던 개 '상암이'가 떠올랐다. 상암이는 온순한 성격 덕분에 시민들과 반려견 놀이터 관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10여 명의 시민들은 상암이를 구조해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개를 잡아달라는 민원에 서부공원녹지사업소가 마취총을 이용해 포획을 시도하던 중 어깨에 마취총을 맞은 상암이는 쇼크로 세상을 떠났다. 이를 계기로 유기동물 포획방법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고, 서울시는 한동안 마취총 포획을 하지 않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떠돌이 개 포획에 마취총이 다시 사용되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상암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유기견 구조 마취장비 사용 매뉴얼'을 만들었고, 마취 포획 시에는 반드시 수의사가 동행하도록 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말까지 관악산·북한산 등 서울시내 주요 산지와 주변 산책로에서 개를 집중 포획하고 있다. 개를 잡아 달라는 민원과 잡지 말라는 양측의 민원이 빗발친다고 했다. 서울시는 산지를 떠도는 개들의 수를 200마리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잡힌 개들을 동물보호단체와 협력해 사회화 훈련을 거쳐 입양자를 찾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순치가 어려운 경우도 많고, 중대형 믹스견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대부분은 살처분될 것으로 보인다.
떠돌이 개는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천에서는 포획한 개 1마리당 50만 원을 지급해 논란이 되기도 했고, 제주와 부산 등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떠돌이 개가 누군가에게는 존재만으로 위협과 공포가 될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포획이라는 사후 대책 이전에 떠돌이 개의 수는 왜 매년 줄지 않는지, 포획된 떠돌이 개는 어떻게 '처리'됐는지, 포획→살처분 이외에 다른 해법은 없는지에 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먼저 이뤄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