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간 끌기' 통했다... 보수 우위 미 대법 "면책특권 다시 따져보겠다"

입력
2024.02.29 18:30
트럼프 '면책특권' 주장 심리하기로
재판 빨라야 9월 말... "트럼프 승리"
6000억 벌금·후보 자격 박탈 악재도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혐의'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면책특권" 주장을 심리하기로 했다. 대통령 재임 때 일이라 해당 혐의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다던 트럼프 측 주장을 대법원이 다시 따져보기로 했다는 뜻이다.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재판을 최대한 미루려는 트럼프의 '시간 끌기' 전략이 먹혔다는 평가다. 다만 남아 있는 사법 리스크가 다수인 만큼 험난한 재선 가도가 예상된다.

'보수 우위' 대법, 면책특권 판단한다

28일(현지시간) 미 AP통신,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이날 대법원은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혐의와 관련해 '자신의 면책특권 주장을 기각한 판결의 효력을 중단해 달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앞서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6일 "대통령 재임 당시 공무 행위에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적용해야 한다"는 트럼프 측 주장을 기각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효력 중지를 신청했다.

이번 대법원 결정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선 여러모로 유리한 국면을 맞게 됐다. 대법원은 첫 변론 기일을 오는 4월 22일로 잡았다. 현지에선 7월 법원 휴정기 전 결론이 나오겠지만, 본안 재판은 9월 말~10월은 돼야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일부 주(州)에선 9월이면 대선 조기 투표가 실시된다.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 최대한 시간을 끌어 재판을 11월 대선 이후로 가져가려는 트럼프 전 대통령 전략이 맞아떨어지게 된 셈이다.

대법원 구성도 불리할 게 없다. 대법관 9명 중 6명이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 중 3명은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임명됐다. 만약 재판이 내년으로 해를 넘기고, 그 사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신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을 통해 아예 소송을 기각시키거나, '셀프 사면'도 가능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감사하다"며 이날 대법원 결정에 대한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일리노이 법원 "트럼프 후보 자격 박탈"

민주당 등은 우려를 쏟아냈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민주당)은 "전직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미국의 근본 가치를 대법원이 지켜낼지 두고 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스티브 블라데크 텍사스대 로스쿨 교수는 CNN에 "관련 재판이 적어도 3~5개월은 지연될 것"이라며 "설사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특권) 주장을 배척한다 해도 이건 트럼프의 큰 승리"라고 했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관련 앞날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그는 대선 개입을 포함해 △2021년 1·6 의회 난입 사태 △성추문 입막음 의혹 △기밀문서 유출 등 4개 사건과 관련해 형사 기소된 상태다. 혐의만 91개다. 사기 대출과 명예훼손 등 민사 소송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특히 이날 뉴욕 법원은 사기 대출 혐의와 관련된 4억5,400만 달러(약 6,000억 원) 규모의 벌금 집행 절차를 완화해 달라는 트럼프 측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을 위해선 벌금 이상의 금액을 공탁해야 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확보 불가능한 규모"라며 1억 달러(약 1,300억 원) 상당의 채권 공탁 의사만 밝혔고 판사는 이를 거절했다.

같은 날 일리노이주 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부추겨 1·6 사태를 촉발했다"는 이유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하기도 했다. 이번 자격 박탈은 앞서 콜로라도와 메인주에 이어 세 번째다. 다만 일리노이주 법원은 트럼프 측 항소 등을 감안해 이번 결정의 효력은 유예했다.

조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