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홍등가 옮겨 짓는다는 '에로틱 센터'... 뜨거운 찬반 논란

입력
2024.03.09 04:30
13면
[신은별의 별의별 유럽: 시즌 2] 
③ 유명 홍등가 '드 발렌' 이전

편집자주

우리가 알아야 할, 알아두면 도움이 될, 알수록 재미있는 유럽의 이야기를 신은별 유럽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여기 봐 봐." "저쪽으로도 가 보자."

앳된 얼굴의 두 남성이 길거리에서 미소를 머금은 채 대화하고 있었다. 이들 앞에는 통유리로 된 작은 점포가 있고, 점포 안에는 붉은빛이 가득했다. 방 안에선 주요 부위만 가린 여성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매매 거리',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드 발렌(De Wallen·네덜란드어로 '홍등가'라는 뜻)'의 풍경이다. 이곳에는 약 250개의 '창문형 성매매 업소'가 모여 있다.

드 발렌은 네덜란드는 물론, 유럽에서도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암스테르담 연간 관광객 2,000만 명 가운데 5분의 1가량이 드 발렌을 찾는다. 다른 나라에도 홍등가가 있지만 유독 암스테르담 드 발렌의 인기가 높은 데엔 이유가 있다. 우선 ①도심 한복판에 식당·카페 등 여러 상점과 뒤섞여 존재하는 홍등가는 전 세계에서 드물다. ②또 성인용품 상점, 성인용 공연장 등 연관 산업도 주위에 잔뜩 몰려 있다. ③무엇보다 2000년 네덜란드에서 성매매가 합법화한 탓에 많은 사람이 '네덜란드 문화 경험'을 이유로 이곳을 찾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한 사설 관광업체에서 일하는 마리나는 "관광 지도에 표시돼 있지 않아도 누구나 찾아가는 인기 장소"라고 드 발렌을 소개했다. 금요일인 지난달 2일(현지시간) 찾은 드 발렌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드 발렌을 두고 최근 네덜란드 사회는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시 당국이 암스테르담 외곽 지역에 '에로틱 센터(Erotic Center)'라는 별도 빌딩을 만든 뒤, 여기에 드 발렌의 성매매 업소 일부를 이전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은 왜 성매매 업소를 강제로 옮기려는 걸까. '이전 반대' 측에서는 왜 에로틱 센터를 '최악의 정책'이라고 부르는 걸까. 드 발렌에 얽힌 논란을 한국일보가 현지에서 취재했다.


"문화 센터처럼…" '에로틱 센터' 짓겠다는 시

드 발렌 이전 논의는 2019년 재임 1년 차였던 펨커 할세마 당시 암스테르담 시장이 "드 발렌에 있는 약 250개의 성매매 업소 중 100곳가량을 에로틱 센터에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에로틱 센터 이전 지역으로 암스테르담 남부 '유로파대로'에 위치한 공터가 최종 후보지로 결정됐다. 암스테르담 관광의 중심인 중앙역과 직선거리로 5㎞ 이상 떨어진 이곳은 유수의 기관·기업이 밀집해 있는 전형적인 비즈니스 지역이다.


할세마 시장은 드 발렌의 일부를 도심 한복판에서 외곽으로 이전하는 게 '성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일단 ①성매매 업소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성 노동자들이 행인, 특히 술·마약에 취한 이들로부터 위협받기 일쑤였고, ②관광객들에겐 구경거리로 전락했다고 봤다. 즉 드 발렌 이전은 성 노동자가 '진짜 고객'이 아니라, '가짜 고객'을 상대하는 노고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였다.

아울러 드 발렌 이전이 암스테르담 거주자와 방문객 모두에게 이득이라고도 주장했다. 할세마 시장의 각종 발언을 종합하면 이렇다. "네덜란드가 성매매 합법화, 대마초 사용 허용 등의 정책으로 '무한한 자유의 도시'로 여겨져 왔는데, 결국 '통제되지 않는 자유'가 횡행하는 꼴이 됐다. 이는 주민, 관광객 모두에게 손해다. 그러나 성매매 업소 절반가량을 에로틱 센터로 이전하면, 성매매 산업을 유지하면서도 도심의 유해 환경을 제어할 수 있다."

시는 에로틱 센터의 '청사진'도 일찌감치 마련해 뒀다. 그간 발표한 조감도 및 보도자료에 따르면, ①에로틱 센터의 일부 층은 성매매 업소 전용으로 할당되는데 ②이때 성 노동자는 드 발렌에서처럼 복도로 난 창문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건물 밖에서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③다른 층에는 성 관련 시설뿐만 아니라 식당, 술집, 각종 문화·체육·의료· 복지·상담 시설을 두루 수용할 예정이다. 시는 이를 일종의 '성 문화센터'로 묘사한다.


"도시 이미지 제고" vs. "관광 축소 등 악영향"

드 발렌 이전이 암스테르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도시 이미지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는 시의 입장에 찬성하는 사람을 현지에서는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암스테르담 시민은 "외국인을 만나 자기소개를 하면 대부분 성매매를 언급할 정도로, 드 발렌이 암스테르담 이미지 훼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이것은 네덜란드 전체에 결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이 '새로운 유형의 관광지'로서 재발견될 수 있다는 데 기대를 거는 이도 있었다. 암스테르담 주민 기스(35)는 "암스테르담은 강줄기가 도시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다"며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같은 이미지로 거듭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다만 반대 의견도 상당했다. 드 발렌에서 30년 넘게 거주했다는 기온은 "홍등가는 주변 상권과 밀접하게 얽힌 채 존재한다"며 "홍등가를 없애는 건 곧 팬케이크(암스테르담 대표 음식) 가게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산업 위축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또 "성 노동자가 업무 중 각종 폭력 등에 노출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으나, 이는 행정력을 보강해 해결할 문제이지 성 노동자를 도시 밖으로 보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도 덧붙였다.

드 발렌 이전 계획이 암스테르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유의 도시'라는 중요한 상징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네덜란드 성매매를 집중 연구해온 마리얀 위저스 영국 에식스대 박사후연구원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드 발렌에는 교회도 있고, 학교도 있다. 이러한 도시 형태는 수백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네덜란드 유산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존하는 게 없애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성 노동자 위한 것" 주장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에로틱 센터가 성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라는 데 대해선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성 노동자들의 반대가 심했다.

드 발렌을 기반으로 성매매 노동자의 권익을 지원하는 매춘정보센터(PIC) 관계자 피비는 "성 노동자들은 에로틱 센터에서 오히려 불안을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매매 특성상 현금 거래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는 눈이 많은 곳'(드 발렌)이 '사람 없는 공터'(유로파대로)보다 안전하다"고 짚었다.


실제로 유로파대로를 찾아가 봤더니 피비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중앙역에서 1㎞도 채 떨어져있지 않아 24시간 활기가 넘치는 드 발렌과 달리, 에로틱 센터가 들어설 부지 옆은 아무런 건물이 없었다. 비즈니스 구역이라고는 하지만 기관·기업은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데다 퇴근 시간 이후에는 인적이 거의 끊겼다.

피비는 "에로틱 센터가 성 노동자 생업을 망가뜨릴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 구매자 상당수는 '암스테르담 문화 체험을 위해 드 발렌에 간다'는 명분으로 드 발렌을 찾았다가 성을 구매한다. 그런데 에로틱 센터가 들어설 곳은 관광지와 동떨어져 있다. '잠재적 성 구매자' 상당수는 성매매 목적성이 분명한 행보를 보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로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할 것이다."

"또 시작된 '낙인찍기'?"... 합법화에도 논란 계속

드 발렌 이전 논란은 성매매 합법화 이후 시간이 흘러도 성매매가 여전히 논쟁 대상임을 단적으로 알려 줬다. 드 발렌에서 만난 한 성 노동자는 "작업장을 아무렇게나 옮긴다는 발상은 성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위저스 연구원도 "드 발렌에서는 성 노동자가 모두와 어울려 살 수 있고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지만 고립된 지역에, 고립된 건물이 될 에로틱 센터에서는 '숨어야 할 대상'이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에로틱 센터 건립 논의 과정에서 성매매 노동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에로틱 센터의 본격적인 건립 과정에서 관련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최종 후보지에 거주하거나 근무하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반대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로파대로 인근에 위치한 유럽연합(EU) 기관 유럽의약품청(EMA)은 서면 인터뷰에서 "드 발렌에서 일어났던 소란, 마약 거래, 음주, 무질서한 행동 등이 이쪽으로 올 확률이 크다"며 "시의 의사 결정 과정을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암스테르담=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