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일본 기업 주총 찾아 “사죄·배상하라”

입력
2024.02.27 18:00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유족
"한국 재단이 내는 배상금 안 받아"
후지코시 사장은 직접 배상 거부

“한국의 재단이 후지코시 대신 배상금을 낸다 해도 저는 그런 돈은 받지 않습니다. 저는 돈 때문에 도야마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강제노동을 했던 고(故) 임영숙씨 남편인 김명배(93)씨가 드러낸 결의다. 그는 27일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에 있는 제철·금속 제품 회사 후지코시 주주총회장에 주주 자격으로 참석, 후지코시에 “징용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요구하며 이같이 밝혔다.

강제동원 피해자, 후지코시 주총 직접 참석

앞서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유족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3건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지난달 확정했다. 하지만 후지코시는 이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이미 해결됐다”며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대신 지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김씨는 이 같은 ‘제3자 변제’ 방식을 거부했다.

김씨는 이날 “일본 정부와 기업의 오만한 태도가 한국에서 식민지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우리 자녀와 손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고 후지코시 사장에게 경고했다. 이어 “원고들이 요구하는 것은 후지코시의 진심 어린 사과”라며 “많은 피해자가 사망한 가운데 아직 8명이 생존해 있는 지금,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가담한 역사를 반성하고 사죄·배상하는 것이 후지코시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후지코시 사장, 배상 거부

하지만 구로사와 쓰토무 후지코시 사장은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강제 연행, 강제 동원, 미지급 임금은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고 주총에 참석한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가 전했다. 구로사와 사장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 문제는 해결됐다.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논의해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사실상 배상을 거부했다.

임씨는 12세 때 일본인 담임교사로부터 “일본에 가서 일하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라”는 권유를 받고 일본으로 갔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린아이들이 하기 어려운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외출도 못 하고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하다 전쟁이 끝나고 귀국했다. 김씨는 “(임씨가) 나이 들어 죽는 순간까지 속아서 (일본에) 간 데 대한 상처를 갖고 있었다”며 “죽은 후에 아내를 다시 만나면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해주기 위해 끝까지 아내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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