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경쟁에 나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와 진보라는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구도와 인물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해 궁극적으로 중도층 표심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다. 다만 전례에 비춰, 표심만을 노린 포퓰리즘적 행태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야 모두 이번 총선에서 가장 '상품성' 있는 후보는 전향 인사다. 운동권 청산 프레임을 내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나 진보진영에서 전향한 인사들을 전진배치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을에 전략공천한 함운경 민주화운동 동지회장이 대표적이다. 86세대 운동권 출신 현역 민주당 정청래 의원 대항마로 국민의힘이 내세운 함 회장은 1980년대 강성 운동권 출신으로, 이후에도 주로 열린우리당 등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활동하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지지로 돌아섰다. '이재명 저격수'로 알려진 조광한 전 경기 남양주 시장도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긴 후 경기 남양주병에 단수공천됐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 의원도 자신의 지역구인 대전 유성을 공천을 확정받았다.
윤석열 정권 심판을 들고나온 민주당도 전향 인사들 배치에 적극적이다.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국민의힘으로 넘어가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던 이언주 전 의원 복당이 대표적이다. 그의 철새 경력에 대한 일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는 수도권 접전지역에 투입해, 선명한 윤 정부 심판론을 드러내고자 한다. 2년 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신용한 전 서원대 교수도 민주당에 영입됐다.
정책도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양상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7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기후대응기금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기후 공약'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한 위원장은 "기후위기는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거 진보 진영의 주요 의제였던 기후 문제를 한 발짝 빨리 띄워, 민주당으로 수렴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다. '서울 인접 도시의 서울 편입' 공약과 함께 국민의힘이 추진 중인 경기 북부 분도 정책도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가 2년 전 취임 때부터 밀고 있는 사안이다. 민주당도 보수 정당에서 선점하던 '개발 공약'에 적극적이다. 국민의힘의 '철도 지하화' 구상에 맞선 민주당은 기존의 철도와 GTX, 도시철도까지 전부 지하화겠다는 파격적 안을 내놓았다. 지역도 수도권은 물론 부산과 대전, 대구 등 전국적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다만 선거를 목전에 두고 표심만 쫓는 이런 행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공약과 행태가 비슷하게 몰리는 것은 결국 중도층 표심 때문"이라며 "정책이나 인물이나 일회성으로 그치면 정당 정치의 폐단만 드러내고 유권자들에게도 더 큰 실망만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