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보조금 신청한 첨단 반도체 기업들, 절반 받기도 힘들 듯

입력
2024.02.27 08:26
8면
요청액 93조 원… 책정금은 37조 원 불과
러몬도 상무장관 “세금 아끼려 쥐어짠다”

미국 정부에 생산 보조금을 신청한 최첨단 반도체 기업들이 원하는 금액의 절반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자금 수요가 정부 가용 규모의 두 배를 훌쩍 넘긴 탓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26일(현지시간)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대담에서 미 '반도체·과학법(칩스법)'과 관련해 “인텔, 대만 반도체 제조회사(TSMC), 삼성전자 등 최첨단 반도체 기업들이 요청한 보조금 총액이 700억 달러(약 93조 원)가 넘는다”고 밝혔다. 상무부가 칩스법을 통해 책정한 반도체 생산 보조금은 390억 달러(약 52조 원)이고, 그중 최첨단 반도체에 배정된 금액은 280억 달러(약 37조 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 서명한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투자 장려를 위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생산 보조금 390억 달러와 연구·개발(R&D) 지원금 132억 달러(약 18조 원) 등 총 527억 달러(약 70조 원)를 5년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보조금을 받으려) 미국 안팎의 반도체 기업들이 상무부에 제출한 투자의향서가 총 600건이 넘는다”며 “관심을 표명한 기업 상당수가 자금을 받지 못하리라는 게 잔혹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러몬도 장관 발언은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납세자의 세금을 최대한 아끼려 애쓰고 있다는 취지다. 그는 “협업 정신으로 업계와 협력하고 있으나 나는 납세자의 돈을 보호하는 데 충실하고 있다”며 “개별 기업과의 어려운 협상을 통해 각 기업이 더 적은 비용으로 경제와 국가 안보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내 의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1달러까지 쥐어짠다(squeezing)”고 강조했다.

러몬도 장관은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와서 수십억 달러를 요청하면 난 ‘타당한 요청이지만 요청액의 절반만 받아도 당신은 운이 좋다’고 말한다. 그들이 최종 합의를 하려고 다시 올 때는 원했던 금액의 절반도 못 받게 되고 그들은 ‘운이 나쁜 것 같다’고 한다”며 “그게 현실”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3월 말 삼성 등 보조금 발표”

칩스법은 성과가 있었다. 러몬도 장관은 대규모 최첨단 ‘로직 반도체’(논리적 연산을 수행하는 시스템 반도체) 생산 클러스터 2곳을 조성하는 게 원래 목표였는데 이를 초과 달성할 듯하다며 2030년까지 세계 최첨단 로직 반도체 생산량의 약 20%를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최첨단 로직 반도체가 전혀 생산되지 않고 있다. 그는 앞으로 ‘제2 칩스법’이 필요할 수 있다고도 했다.

상무부는 지금껏 영국 방위산업체 BAE시스템스,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 및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3곳이 대상인 보조금 지급 계획을 공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3월 말에는 삼성전자와 인텔, 대만 TSMC 등 미국에 시설 투자를 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보조금 지급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