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매직’, 농심배서 파죽의 6연승…‘신 상하이 대첩’ 신화 썼다

입력
2024.02.2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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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농심배’ 최종국서 구쯔하오 9단에 신승
단기필마로 5명 중국 대표팀 ‘올킬’
농심배 통산 16연승 신기록 행진도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알려진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상금 5억 원)의 최종 우승 트로피는 결국 한국에 돌아갔다. 마지막 주자로 나온 신진서(24) 9단이 일본(1명)과 중국(5명)의 초일류급 선수들을 상대로 기적 같은 6연승과 함께 대역전 우승까지 일궈내면서다. 신 9단은 이로써 지난 2005년 열린 ‘제6회 농심배’에서 한국팀 수호신으로 등판, 일본(2명)과 중국(3명) 선수 5명을 잇따라 물리치고 우승까지 차지했던 이창호(49) 9단의 ‘상하이 대첩’ 재현에도 성공했다.

신 9단의 ‘신 상하이 대첩’의 마침표는 23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 호텔에서 찍혔다. 신 9단은 이날 ‘제25회 농심배’ 3라운드 본선 최종국에서 중국 랭킹 1위인 구쯔하오(26) 9단에게 249수 만에 불계승, 한국팀의 우승까지 확정했다. 현재 유일한 국가대항전인 농심배는 한·중·일 각 나라에서 뽑힌 5명의 선수가 팀을 구성, 연승전 형태로 진행된다.

‘신 상하이 대첩’의 마지막 대국은 살얼음판에서 진행됐다. 우변과 우상귀 전투 도중 두 선수의 실수가 이어졌지만 구쯔하오 9단의 형세 판단 미스로 나온 결정적인 실수에 힘입어 '제25회 농심배'의 역사적인 최종국 승리는 신 9단에게 적립됐다.

최악의 상황서 등판한 ‘수호신’ 등판, '25회 농심배' 6연승 복기

새 역사로 새겨졌지만 신 상하이 대첩의 출항길은 순탄치 않았다. 신 9단을 제외한 모든 한국팀의 선수들이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좌초하면서다. 천하의 신 9단에게도 1대 6으로 짜여진 다국적 반상(盤上) 전투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신 9단의 ‘매직’은 첫판부터 가동됐다. 지난해 12월, 이번 농심배에서만 7연승을 달려온 중국의 셰얼하오(26) 9단부터 이른 시간 내 단명국으로 격침시킨 것. 승부처였던 우상귀 대마 사활 전투와 관련 “AI를 뛰어넘는 결정타(101수, 103수)를 잇따라 보여줬다”는 박정상(37) 9단의 바둑TV 해설에서 알 수 있듯, 신 9단의 묘수는 초반부터 터졌다.

물오른 기세는 무서웠다. 일본 수호신으로 등장한 이야마 유타(35) 9단에서부터 중국의 자오천위(25) 9단과 커제(27) 9단, 딩하오(24) 9단 등을 포함해 내로라했던 최정상급 기사들은 모두 신 9단의 현란한 행마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실제, 매 대국마다 표시됐던 AI 승률 그래프는 초·중반 무렵부턴 모두 신 9단의 우세를 점쳤다.

'농심배'에서만 새롭게 쓰여진 기록은?

풍성한 전리품은 덤이다. 농심배 연승 행진부터 눈에 띈다. 이번 대회에서만 6연승을 추가시킨 신 9단의 농심배 통산 연승은 16승으로 늘었다. 기존 농심배 최다연승 기록 보유자였던 이창호(49) 9단(14연승)과 격차를 벌리면서 1위로 올라섰다.

순도 역시 뛰어나다. 농심배에서만 16승 2패를 기록하면서 88.89%의 승률로, 이 부문 역시 이창호(19승 3패, 86.36%) 9단을 밀어내고 1위에 마크됐다. 신 9단이 평소 가장 애착을 보여왔던 ‘꿈의 승률 90%’ 달성도 가시권에 들어온 상태다.

‘킬러’ 본능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번 농심배에서 단기필마로 출전한 신 9단은 5명으로 구성된 중국팀을 모두 ‘올킬’했다. 농심배에서 특정 선수 1명에게 당한 국가대표팀 전원 탈락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현지에서 직접 신 9단을 독려한 양재호(61)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뤄낸 신진서 9단의 이번 ‘신 상하이 대첩’ 역사는 당분간 깨지긴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 바둑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확인시킨 중요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허재경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