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알려진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상금 5억 원)의 최종 우승 트로피는 결국 한국에 돌아갔다. 마지막 주자로 나온 신진서(24) 9단이 일본(1명)과 중국(5명)의 초일류급 선수들을 상대로 기적 같은 6연승과 함께 대역전 우승까지 일궈내면서다. 신 9단은 이로써 지난 2005년 열린 ‘제6회 농심배’에서 한국팀 수호신으로 등판, 일본(2명)과 중국(3명) 선수 5명을 잇따라 물리치고 우승까지 차지했던 이창호(49) 9단의 ‘상하이 대첩’ 재현에도 성공했다.
신 9단의 ‘신 상하이 대첩’의 마침표는 23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 호텔에서 찍혔다. 신 9단은 이날 ‘제25회 농심배’ 3라운드 본선 최종국에서 중국 랭킹 1위인 구쯔하오(26) 9단에게 249수 만에 불계승, 한국팀의 우승까지 확정했다. 현재 유일한 국가대항전인 농심배는 한·중·일 각 나라에서 뽑힌 5명의 선수가 팀을 구성, 연승전 형태로 진행된다.
‘신 상하이 대첩’의 마지막 대국은 살얼음판에서 진행됐다. 우변과 우상귀 전투 도중 두 선수의 실수가 이어졌지만 구쯔하오 9단의 형세 판단 미스로 나온 결정적인 실수에 힘입어 '제25회 농심배'의 역사적인 최종국 승리는 신 9단에게 적립됐다.
새 역사로 새겨졌지만 신 상하이 대첩의 출항길은 순탄치 않았다. 신 9단을 제외한 모든 한국팀의 선수들이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좌초하면서다. 천하의 신 9단에게도 1대 6으로 짜여진 다국적 반상(盤上) 전투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신 9단의 ‘매직’은 첫판부터 가동됐다. 지난해 12월, 이번 농심배에서만 7연승을 달려온 중국의 셰얼하오(26) 9단부터 이른 시간 내 단명국으로 격침시킨 것. 승부처였던 우상귀 대마 사활 전투와 관련 “AI를 뛰어넘는 결정타(101수, 103수)를 잇따라 보여줬다”는 박정상(37) 9단의 바둑TV 해설에서 알 수 있듯, 신 9단의 묘수는 초반부터 터졌다.
물오른 기세는 무서웠다. 일본 수호신으로 등장한 이야마 유타(35) 9단에서부터 중국의 자오천위(25) 9단과 커제(27) 9단, 딩하오(24) 9단 등을 포함해 내로라했던 최정상급 기사들은 모두 신 9단의 현란한 행마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실제, 매 대국마다 표시됐던 AI 승률 그래프는 초·중반 무렵부턴 모두 신 9단의 우세를 점쳤다.
풍성한 전리품은 덤이다. 농심배 연승 행진부터 눈에 띈다. 이번 대회에서만 6연승을 추가시킨 신 9단의 농심배 통산 연승은 16승으로 늘었다. 기존 농심배 최다연승 기록 보유자였던 이창호(49) 9단(14연승)과 격차를 벌리면서 1위로 올라섰다.
순도 역시 뛰어나다. 농심배에서만 16승 2패를 기록하면서 88.89%의 승률로, 이 부문 역시 이창호(19승 3패, 86.36%) 9단을 밀어내고 1위에 마크됐다. 신 9단이 평소 가장 애착을 보여왔던 ‘꿈의 승률 90%’ 달성도 가시권에 들어온 상태다.
‘킬러’ 본능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번 농심배에서 단기필마로 출전한 신 9단은 5명으로 구성된 중국팀을 모두 ‘올킬’했다. 농심배에서 특정 선수 1명에게 당한 국가대표팀 전원 탈락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현지에서 직접 신 9단을 독려한 양재호(61)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뤄낸 신진서 9단의 이번 ‘신 상하이 대첩’ 역사는 당분간 깨지긴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 바둑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확인시킨 중요한 계기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