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 없으면 어때? 그래도 "김범수는 김범수"

입력
2024.02.25 10:46
김범수, 10년 만 새 정규 '여행'에 담은 독보적 감성
"고음 등 테크닉, 많이 내려놓고 작업...가사 전달에 집중"

화려한 고음이 없어도 김범수는 김범수였다. 고음역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았음에도 짙어진 그만의 감성은 '가수 김범수'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의 '다음 25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김범수는 최근 정규 9집 '여행'을 발매하고 컴백했다. 정규 8집 '힘(HIM)' 이후 10년 만에 발매한 새 정규앨범인 '여행'은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의 음악적 깊이와 진정성을 담았다. 김범수는 이번 앨범을 통해 '가장 김범수다운 음악'으로의 귀환을 알렸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 대중가요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김범수 표 고음'의 부재다. 실제로 김범수는 이번 앨범에서 특유의 고음이나 유려한 테크닉을 배제하며 잔잔하고 짙은 감성의 곡들을 담았다. 이는 김범수의 음악적 고민이 묻어난 결과였다.

김범수는 이번 앨범에 담긴 보컬적 변화에 대해 "지난 정규 8집 이후 '내가 싱어송라이터라는 포지션으로 앞으로 계속 가야할지, 보컬리스트로서의 진정성을 더 담아야 할지'에 대한 기로에 섰었다"라며 "그런데 노래를 하는 것 만큼 곡을 쓰는 것을 잘 할 자신이 없더라. 내가 조금 더 좋은 노래를 내것으로 만들고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내 길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포지션을 바꾸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은 '보컬리스트 김범수'의 정체성을 담은 앨범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김범수는 정규 9집에서 보컬적 역량보다 가사 전달에 심혈을 기울이며 기존의 색과는 차별화된 앨범을 완성했다. 그는 "예전에는 피지컬이나 가창력에 대한 것들을 많이 고민하다보니 앨범 제작에 있어 컨디션에 지장을 많이 받았다면, 이번 앨범은 고음역대의 보컬을 많이 내려놓고 노래를 하려 했다. 정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정일 때만 (노래를) 담으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가수로서 곡 작업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보컬리스트'로서의 본질을 추구하는 행보를 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닌 만큼, 김범수의 '변신'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김범수는 그간 일명 '김나박이'(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로 불리는 국내 남성 보컬 4대장 중 한 명으로 꼽혀왔던 바, 오랜 연차가 쌓인 지금 이러한 타이틀을 스스로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범수는 "'김나박이'라는 타이틀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 무게감에 짓눌리는 느낌도 들고, 힘이 들어가다 보니 망치는 무대도 많았다"라며 "이걸 내려놓고 가야겠다 싶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1~2년 정도 걸린 것 같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대중이 자신에게 부여한 타이틀에 얽매이는 대신 새로운 길 위에 발을 딛으며 '가수 김범수'의 정체성을 찾는 쪽을 택했다. 소위 '잘 팔리는' 음악에 안주하지 않고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과 과감한 결정을 내린 그의 행보는 김범수라는 가수의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든다.

김범수는 자신의 목표를 "딱 50년 동안 무대에 서는 것"이라 말했다. 이제 25년을 걸어온 만큼 앞으로 새로운 25년이 남은 셈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초심으로 돌아간 그가 이번 앨범 이후 보여준 모습은 과연 무엇일지,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홍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