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무서울 정도다. 기업 가치가 1조 달러(약 1,300조 원)에 도달하는 데까지는 기업공개 후 24년이 걸렸지만, 2조 달러에 도달하는 데는 9개월이 채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22일(현지시간) 하루 만에 시가총액 약 360조 원을 추가한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얘기다.
엔비디아 주가가 이날 뉴욕 증시에서 또다시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전날보다 16.4% 폭등한 주당 785.38달러에 장을 마감하면서, 엔비디아 시총도 1조6,670억 달러에서 1조9,390억 달러로 2,720억 달러(약 361조 원) 증가했다. 하루 만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의 시총과 맞먹는 가치를 추가한 것이다. 이는 "역대 일일 증가폭 중 최대"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엔비디아 주가를 밀어 올린 건 전날 공개된 실적이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4분기 매출이 1년 전보다 265% 늘고, 총이익은 769% 급증했다고 밝혔다. 모두 시장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결과다.
엔비디아 효과는 전 세계 증시까지 춤추게 했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만9,000선을 돌파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5,000선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 기록을 새로 썼다. 나스닥 지수는 2021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1만6,000을 돌파하며 장을 마감했다.
반도체 주가를 대표하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날 엔비디아 실적 발표 직후 3만9,000엔을 돌파, 1989년 기록된 역대 최고치(종가 기준)를 34년여 만에 넘어섰다.
주가 폭등에 힘입어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부호 2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됐다. 황 CEO의 자산 가치는 이날 하루 새 80억 달러(약 10조6,000억 원) 불어나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세계 23위에서 21위로 두 계단 올랐다. 지난해 초 그의 순위는 128위였다.
세계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는 2022년 말 시작된 생성 AI 열풍의 덕을 가장 크게 본 회사다. 전 세계적으로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작년 한 해에만 주가가 3배 올랐고, 올해도 현재까지 60%가량 상승한 상태다.
이미 주가가 많이 올랐음에도 여전히 상승 여력이 있다는 평가가 시장에선 우세하다. 전날 실적 발표 후 최소 17개 사가 엔비디아 주가 목표를 상향했다. 이 중 로젠블랫증권은 엔비디아 시총이 3조5,000억 달러까지 갈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AJ벨의 러스 몰드 분석가는 "1800년대 중반 골드러시 때 가장 많이 돈을 번 사람은 금을 찾던 이들이 아니라 곡괭이를 팔던 이들"이라면서 "오늘날 엔비디아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 업체들보다 오히려 핵심 개발 장비를 업체에 공급하는 엔비디아가 최대 승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신중론도 없지 않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여파로 매출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UBS는 이를 이유로 목표 주가를 850달러에서 800달러로 낮춰 잡았다. 그러나 황 CEO는 전날 실적 발표 뒤 인터뷰에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중국용 제품을 개발해 중국 고객사들에 보낸 상태"라고 자신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