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당초 4월 18일 내보낼 예정이던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바람과 함께 살아낼게’(가제) 방송을 돌연 연기한 데 이어 결국 제작까지 중단했다. KBS는 처음엔 “프로그램 기획 의도가 대형 참사 생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극복기인 만큼 다른 참사들과 함께 다뤄 6월 이후 방송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론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어 4월 방송은 안 된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이에 제작진 반발이 커지고 출연자들까지 "4월 방송이 아니면 촬영에 응할 수 없다"고 하자 다시 회의를 열어 “출연자들이 참여를 거부하면 더 이상 제작은 불가능하고 방송도 낼 수 없다”고 통보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촬영이 40%가량 진행된 상태다.
총선은 4월 10일 치러지고, 세월호 참사 10주기는 4월 16일이다. 선거 8일 후 방영되는 세월호 다큐가 어떻게 개표까지 끝난 ‘과거의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지 그 논리가 황당해 어이없다. 사후 방영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결과를 뒤엎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궤변에 제작진과 출연진이 납득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데 이번엔 이를 빌미 삼아 아예 제작 중단까지 결정했다. 설상가상이다.
프로그램 제작 여부와 방영 시기 결정권은 KBS에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이나 대형 사고를 다루는 방송은 해당 기념일 전후로 내보내는 게 상식이고 관례다. 총선 영향 등을 운운하며 방영 시기를 늦추거나 제작까지 중단하는 건 그야말로 정치적 고려다. 304명이 희생된 참사로 생긴 전 국민적 상처를 위로하는 일까지 선거 이해타산을 따지는 건 가당찮은 일이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KBS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대신 녹화로 진행된 특별대담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한 채 실망만 안겼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들은 TV수신료 거부로 ‘국민의 방송’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