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10명 중 7명 사직… 4년 전 '의료 대란' 재현되나

입력
2024.02.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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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기준 전공의 8816명 사직서 제출 
정부 6000명 넘게 업무개시명령 내렸지만
54%는 현장에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
정부 "구속수사 원칙" "대화하자" 강온책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한 지 이틀째인 21일, 전공의 10명 중 7명꼴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임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맞서 전체의 80%에 육박하는 전공의가 파업에 나섰던 2020년처럼 의료대란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의사단체는 2,000명 증원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전공의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는 증원 규모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으면서도 의사들에게 "대화를 통해 정책을 구체화하자"고 제안했다.

복지부 명령에도 전공의 절반은 미복귀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브리핑에서 20일 오후 10시 기준 전국 주요 수련병원 100곳(전체 전공의의 95% 소속)에서 전공의 8,816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날 집계치(6,415명)보다 2,400명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들 100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가운데 71.2%에 해당하며, 전체 221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3,000여 명에 대비해도 70%에 육박한다. 다만 복지부가 수련병원에 내린 명령에 따라 아직 수리된 사직서는 없다.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7,813명으로 파악됐다. 복지부는 현장 점검을 통해 이 가운데 6,112명의 근무지 이탈을 확인하고,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715명을 제외한 5,397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명령은 즉각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일까지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전공의는 총 6,228명인데, 그중 현장에 복귀하지 않아 정부가 수련병원에서 불이행확인서를 받은 전공의가 3,377명(54%)이다. 복귀 명령을 받은 전공의의 절반 이상이 이를 따르지 않은 상황이다.

환자들 "희생양 될까 두렵다... 제발 돌아와달라" 호소

중증·응급진료 중추인 대학병원에서 핵심 인력으로 근무하는 전공의가 대거 자리를 비우자 환자들 사이에선 4년 전 의료대란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0년 의료 파업 당시 부산에서 약물을 마신 40대 남성이 3시간 넘게 응급처치를 해줄 병원을 찾아다니며 울산까지 갔지만 결국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호소문을 발표하고 "이번 의료대란 사태로 희생양이 되는 환자가 생길까 두렵다"며 "조속히 의료 현장에 복귀해줄 것을 전공의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ㆍ지원센터'를 통해 접수하는 환자 피해 사례도 이틀간 100건에 육박했다. 복지부 집계(매일 오후 6시 기준)에 따르면 19일 34건이었던 환자 피해 접수 건수가 전날에는 △수술 취소 44건 △진료예약 취소 8건 △진료 거절 5건 △입원 지연 1건 등 58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중수본은 환자 피해 최소화를 위해 공공의료기관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차관은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등 전국 97개 공공의료기관장과 비상진료 대책을 논의했다"며 "모든 기관은 24시간 응급진료, 필수의료 진료 유지, 진료시간 확대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 "증원 규모 빼고 모든 논의 가능"

의사단체들은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전날 총회를 마치고 낸 성명에서 "두 정책은 한국 의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복지부는 의료사고 대응책, 전공의 수련시간 개선안 등을 마련하고 업무개시명령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이날 "국민의 생명권은 당연히 소중하나 의사의 직업 선택 자유 역시 국민의 기본권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전공의 집단행동을 두둔했다.

정부는 이날 법무부·행정안전부 합동브리핑을 통해 "의사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주동자와 배후세력은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며 강경 방침을 밝히면서도, 복지부를 통해서는 의정 대화 의지를 밝히며 강온전략을 펴는 분위기다.

박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모든 어젠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할 수 있다"며 "대안 없이 반대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수정하길 원하는지 밝힌다면 좋은 대안이라면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공의들을 향해 "대전협이 요구한 수련환경 개선, 수가 인상, 의료사고 특례법 등은 모두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포함돼 있다"며 "전공의들이 정부 정책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다른 의사단체와는 소통하고 있지만 전공의들과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며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논의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부는 다만 '증원 규모 2,000명'은 타협 불가 사안이라 전공의들과의 협상 조건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차관은 "2,000명이라는 숫자도 부족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며 "환자의 생명을 가지고 협상할 수는 없는 만큼 전공의 복귀는 조속히, 조건 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