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몽교·와룡교·여의교… 이제 신선도 하늘다리로 건너려나

입력
2024.02.24 10:00
<132>절강고진 ⑤타이저우 신선거와 도저고성

2014년부터 한중등산대회가 열렸다. 매년 찾던 명산이다. 저장성 동남부 타이저우(台州)에 위치한 신선거(神仙居)다. 북송 진종이 선거(仙居)란 미명을 하사했다. 천로산(天姥山)이나 위강산(韋羌山)이라 불리다가 성은을 입고 신선이 거주하는 산이 됐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동안 등산로를 막고 다리를 많이 만들었다. 4년 만에 갔더니 처음 찾은 듯 낯설다.

움찔하거나 아찔하거나... 저장성 명산 신선거

산문은 북쪽과 남쪽에 하나씩 열려 있다. 30분 정도 걸어 북해(北海)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 협곡 사이 매달린 케이블카가 운무 가득한 정상을 향해 오른다. 처음에는 완만하다가 점점 솟구친다.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이 보인다. 내리막 없이 오르막이다. 구멍 뚫린 듯 폭포수가 세차게 떨어지고 있다.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휙 날아오르는 느낌이다. 꽤 스릴 넘치는 비상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시야가 살아난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협곡을 연결한 다리가 보인다. 선녀의 허리를 닮았다는 여의교(如意橋)다. 황제를 알현하는 신하가 들고 있거나 승려나 도사가 설법하는 도구와 닮았다. 두 개의 여의가 꽈배기처럼 묶인 듯하다. 30여분을 걸어간다. 양쪽 끝에 있는 유리 잔도에 서니 다리가 떨린다. 위로 가나 아래로 가나 다시 내려가고 올라가야 한다. 몸이 다리 바깥으로 움찔해 걷기조차 힘들다. 다리를 왕복하니 땀이 계곡으로 흐르는 듯한 기분이다.


서쪽 절벽에 쌓은 보리도(菩提道)를 한 바퀴 돈다. 암반을 뚫어 만든 잔도다. 멀리서 보면 위험천만한데 꽤 튼튼하다. 부처 모습을 닮은 불조봉(佛祖峰)이 시선 아래에 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는 형상이다. 무아지경으로 바라보면 열반의 경지를 느낄지 모른다. 꼬불꼬불한 잔도가 보이고 돛단배가 바다를 순항하는 일범풍순(一帆風順)이 멀리 보인다. 저마다의 형체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암석의 진열장이다. 화산 작용으로 생겨난 유문암이 빚은 절경이다.

동쪽 절벽을 따라 반야도(般若道)를 걷는다. 암석이 나타나면 그럴싸한 이름을 짓고 전망대를 차렸다. 감상의 여유를 부리는 쉼터다. 멀리 십팔나한(十八羅漢)이 펼쳐진다. 조금 가깝게 봉우리 셋이 옹기종기 붙은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손짓한다. 꼭대기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봉우리가 보인다. 밥그릇처럼 생겨 천하양창(天下糧倉)이라 한다.

반야도와 인연도의 갈림길에 이르니 야릇한 모양의 다리가 보인다. 바람이 지나던 협곡을 이은 와룡교(臥龍橋)다. 잔도를 따라가니 원몽교(圓夢橋)가 먼저 나타난다. 잔잔한 다리인데 여전히 아래쪽을 보기엔 힘들다. 고개를 돌아가니 신선의 거처에 드러누운 용의 몸짓 같다. 분기탱천한 용이 휘감은 듯한 다리다. 자연 속에 구축한 대공사가 낯설고도 부럽다. 이런 발상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바닥을 무지개색으로 칠해 울긋불긋하다. 군데군데 투명하게 만들어 낭떠러지로 끌려가는 느낌이다. 공포스럽지만 반드시 다리를 건너야 완주가 가능하다. 바람까지 부니 몸을 똑바로 펴기 힘들 지경이다. 와룡교를 건너 남쪽 방향으로 간다. 코로나19 이후 새로 생긴 4번째 다리인 홍몽교(鴻蒙橋)가 보인다. 기러기도 날아가다가 쉴만한 높이의 봉우리를 이었다.


남천교(南天橋)에 도착한다. 출렁거리는 다리가 랜드마크인 관음봉(觀音峰)을 가리고 있다. 오래된 다리라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다. 협곡 사이 120m를 연결하고 깊이가 100m가 넘는다. 바로 옆에 단단한 철교가 새로 생겼다. 아무리 뛰어도 흔들리지 않으니 고소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편안하게 건널 수 있다.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칠해 보기에도 산뜻하다.

관음봉을 멋지게 볼 수 있는 내불래(來不來) 전망대로 간다. 철근으로 단단하게 묶고 20m가량 떠 있다. 아래를 바라보니 오금이 저리다. 공중 부양한 느낌이다. 동사와 아닐 불(不)을 써서 의문을 만드는 언어다. 이다지도 아름다운 풍광을 보러 ‘올래 말래?’라고 묻는 듯하다. 오른쪽 봉우리인 남천정(南天頂)에 새로 설치된 물체가 보인다.


유리로 만든 고공 전망대다. 추가로 입장료 100위안을 받는다. 공사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나 비싼 편이다. 정상까지 와서 그냥 가긴 어렵다. 산길을 30분 오르니 전망대다. 아래에서 볼 때보다 훨씬 넓다. 고무 바닥에 천으로 만든 간이 신발로 갈아 신는다. 유리 바닥이라 아래까지 까마득하게 보인다. 이제 신선의 높이에 익숙해져 엎드리기도 눕기도 한다. 입장료만큼의 기분을 누리려면 잠을 자도 좋다. 관음봉을 코앞에서 보는 맛도 제법 좋다.

등산로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남천케이블카도 새로 생겼다. 1시간 이상 걸리던 하산 길이었는데 내리니 바로 출구다. 대신 주차장이 많이 생겼다. 여행객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올 때마다 변화무쌍한 자연 풍광을 감상하고 새로운 인공의 면모도 섭렵했다. 여유롭게 하강하니 신선이라도 된 듯싶다.

조선 선비 최부 일행이 표류한 도저고성


신선거에서 동쪽으로 130km 떨어진 타오주(桃渚)로 간다. 타이저우 린하이(臨海)에 위치한 해안이다. 명나라 중기에 왜구의 출몰이 빈번했다. 1560년 왜구를 전멸시켜 항왜 영웅으로 유명한 척계광 장군의 부임지다. 도저고성(桃渚古城)으로 간다. 2017년 국가급풍경구로 비준을 받았다. 손때가 별로 묻지 않았다. 관광지로 북적거리지 않아 너무 좋다. 고성 광장에 말을 탄 척계광 조각상이 늠름하다.

세 방향에 대문이 있고 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해자가 감싸고 있다. 동쪽 성문으로 들어가니 내성이 나온다. 문도 아담하다. 성벽을 뚫고 나온 나무가 앙상하다. 명나라 당시 성벽은 아닌 듯하다. 관우를 봉공하는 사당은 완전히 방치된 상태다. 지도에는 도교 전각과 고루도 보이는데 공터다. 새로 지을 요량으로 철거한 듯하다.

둘레가 1,300m 정도니 큰 편이 아니다. 골목이 정갈하고 한산하다. 고성 규모에 비해 고택이 제법 많은데 문을 열지 않아 아쉽다. 낭택(郎宅)은 관리를 역임한 낭씨 8대손이 19세기 초에 건축했다. 해방 후 정부가 징수해 곡식 창고로 사용했다. 현대사를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류택(柳宅), 김택(金宅), 세택(谢宅), 오택(吴宅)도 보인다.

성벽이 한걸음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낮다. 서쪽 성벽에 오르니 조공전(趙公殿)이 보인다. 관우와 더불어 재신으로 추앙을 받는 조공명을 봉공한다. 상(商)나라 말기 장군이다. 유교의 문창전도 있고 불교의 관음당도 있다. 서민을 위한 종교는 다 있다. 병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대상을 찾는다.

성벽 위를 한 바퀴 돈다. 바다 쪽을 바라보니 물길이 육지로 들어와 있다. 도강십삼저(桃江十三渚)가 펼쳐진다. 하천에 있는 작은 섬을 저(渚)라 한다. 13개나 되는 섬이다. 고성은 바다에서 10km 내륙에 있다. 도강(桃江)이 바다와 연결돼 있어 고성까지 쉽게 침범이 가능했다.

포 한 문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육박전을 치르기 전 강으로 진입하는 왜구 선박을 포격했다. 의기양양 몰려오던 왜구가 손아귀에 들어온다. 척계광은 원앙진(鴛鴦陣)을 훈련시켜 최강 부대를 만들었다. 11명이 한 부대다. 공격용 창과 방어용 방패를 기본으로 구성한다. 창도 장단(長短)을 배합한다. 맨 앞에 대장이 선다. 바로 뒤에 2명의 병사가 방패를 든다. 둥근 방패인 등패(藤牌)와 긴 방패인 장패(長牌)다.

뒤이어 2명이 창과 갈퀴로 만든 죽창인 낭선(狼筅)을 장착한다. 장창(長槍) 2명, 삼지창 비슷한 당파(鏜鈀) 2명, 큰 몽둥이인 대방(大棒) 2명이 따른다. 맨 뒤에 취사병인 화병(火兵)이 참전하기도 한다. 두 줄 행렬이지만 전투에서는 기민하고 맹렬했다. 위와 오른쪽, 왼쪽을 모두 공격과 방어의 공간으로 삼았다. 하늘과 땅, 사람이 융합된 삼재진(三才陣)이라 부른다. 직접 보지 않으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백전백승이었다. 성벽에 척가군 깃발이 나부낀다. 왜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을로 다시 들어간다. 정자 안에 2005년 주민이 세운 중한민간우호비(中韓民間友好碑)가 보인다. 뜻밖에 최부표해록(崔溥漂海录)이란 글자가 또렷하다. 조선 선비 최부는 15세기 성종 때 제주도에 부임했다 부친상을 당한다. 고향 나주로 가다 겨울 풍랑을 만난다. 최부와 일행 43명은 저장성 동해안에 불시착했다. 도저에서 심문을 받았다. 왜구로 오인돼 고초를 겪다 우여곡절 끝에 신분을 증명한다.

강남의 경항운하를 따라 수도 베이징에 당도한 후 연행 길을 따라 한양으로 귀국한다. 풍랑을 당한 후 귀국에 이르는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표해록은 가치가 매우 높다. 외국인이 기록한 ‘중국 여행기로 최고’라는 중국 학자의 평가도 있다. 기분 좋은 만남이다. 최부는 척계광이 도저에 부임하기 70여 년 전에 왔다.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골목이다. 도저고성이 따뜻한 벗처럼 반갑다.

고성 어디서라도 보이는 봉우리가 있다. 140m 높이의 석주봉(石柱峰)이다. 도강십삼저를 훨씬 멋지게 볼 수 있을 듯하다. 천천히 걸으니 30분이다. 입구에 남송 시대 걸출한 학자이자 마지막 충신인 문천상의 조각상이 있다. 왕조가 멸망하자 원나라에 저항했던 영웅이다. 항전을 지속하던 시절 도저에 왔다.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돼 난초양(亂礁洋)이란 시를 남겼다. ‘바다와 산이 모두 신선의 나라(海上仙子國)’로 시작해 ‘용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네(龍騰上碧空)’라 극찬한다.

예상대로 가파르다. 수직으로 오를 수 없으니 봉우리를 돌고 돈다. 민족 영웅 문천상에 대한 기록을 적은 비석이 있다. 나라 잃은 충신의 풍경 예찬이 아플 만도 하다. 위로인지 자랑인지 가늠하긴 어렵다. 거의 수직인 계단을 따라간다. 정상으로 가려고 새로 만든 길이 분명하다. 몸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틈인 누월동(漏月洞)을 지난다. 겨우 달빛이 보일 정도로 좁다는 말이다.

임해대(臨海臺)에 오르니 섬이 차곡차곡 드러난다. 오른쪽은 바다이고 왼쪽은 고성이다. 왜구가 배를 몰고 침입하자 전투가 벌어졌다. 탐욕에 눈먼 왜구가 섬 사이를 헤치고 진군했다. 해전에 능숙한 왜구가 고성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왜구와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는 상상을 해본다. 겨울에 갔더니 조금 썰렁하다. 섬에 꽃이 피면 아주 멋지다 한다. 이름처럼 복숭아꽃이 필까? 풍광을 확인하러 다시 가고 싶다. 전투는 잊고 색다른 자연의 향기에 빠진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