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하청 배송 노동자들이 이른바 '클렌징'이라고 불리는 계약 방침 때문에 상시적 고용불안 상태에 놓이고,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기도 힘든 '무권리 상태'에서 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쿠팡 노조 측은 회사의 생활물류법 준수와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 등은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대리점 계약 해지 및 클렌징 사례로 보는 하청 노동자 노동권 보호 토론회'를 개최했다. CLS는 쿠팡의 물류 전문 자회사다. CLS는 지역 대리점과 배송 위탁 계약을 맺고, 대리점이 다시 '퀵플렉서'라고 하는 특수고용직 신분의 배송 노동자와 위탁 계약을 맺는다.
이 '간접 고용'의 과정에서 택배노조나 시민단체가 특히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은 '클렌징 제도'다. 배송 수행률, 2회전 배송률, 명절 배송률 등 서비스 기준에 미달한 배송 구역에 대해 CLS는 '언제든지' 해당 대리점에 배정되던 일감을 줄이거나 배송을 회수할 수 있다. 일견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방침으로 볼 수 있지만, 문제는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정당한 파업을 하는 경우에도 '수행률 저하' 등을 이유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혜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2021년에 시행된 생활물류법은 생활물류서비스 종사자(배송 노동자)의 계약 해지는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유효하게 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안정적 계약관계를 유도하고 있다"며 "반면 CLS는 직접적 계약관계가 없는 퀵플렉서의 행위마저 문제 삼아 언제든 계약 해지가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LS가 일감을 주던 배송 구역이 회수되는 것은, 수입이 '0원'이 되는 사실상의 해고라는 게 노조 주장이다. 지난달에도 판교·분당 지역 퀵플렉서들이 프레시백(보냉백) 회수 거부 등 쟁의행위를 한 뒤 서비스 기준 미달을 이유로 배송 구역을 회수당한 상황이라고 택배노조는 밝혔다.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준비위원장은 "국토교통부는 쿠팡의 위·수탁 계약서가 원청·대리점의 갑질 방지, 택배 노동자 고용안정을 취지로 하는 '표준계약서'에 기초해 만들어지도록 지도·감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쿠팡 측은 "CLS는 생활물류법 등 관련 법령을 준수하고 있고, 각 대리점에도 철저한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택배노조는 배송 위탁 지역을 명시하지 않고 상시 변경·회수가 가능하도록 한 계약 방식이 생활물류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강 위원장은 "고용노동부도 클렌징 제도,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배송 캠프 출입 제한 등에 대해서 관리 감독을 하라"고 요구했다. 주최 측은 고용부 담당자에게도 토론회 참석을 요청했으나 "달리 드릴 의견이 없다"는 이유로 불참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쿠팡 측은 "택배 대리점이 위탁 배송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고객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다"며 "노조 주장은 대리점이 배송을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아무 조치 없이 배송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고객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적정 위탁 노선 조정'(클렌징)은 고객 만족을 위한 조치라며 정당성을 강조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