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앙버스터미널. 대형 버스에서 내린 갈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중년 여성이 연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영락없이 긴 여행에 지쳤거나 긴 여행을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이름은 크세니아 트카체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독일 서부 부퍼탈에 정착한 우크라이나 난민이다.
그는 고국을 방문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고 했다. 살기 위해 애써 떠나온 전쟁터를 다시 찾는 이유를 물었다. "2022년 7월 전사한 남동생 유해를 이제야 찾았어요. 같은 해 12월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로 옮겨졌대요. 그래서 장례식을 치르러 갑니다. 남동생이 '천상군(하늘에 있는 군인)'이 되는 길에 함께해 줄 거예요.
전쟁 때문에 해외로 떠나 난민이 된 우크라이나인은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상 644만4,800명(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이들은 이따금 우크라이나로 향한다. 지난해 7월 UNHCR 보고서에 따르면 난민 중 37%가 우크라이나를 한 번 이상 방문했다. 그래서 전쟁 초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빠져나오는 버스·열차만 승객으로 가득했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차편도 꽉 차 있다. 6, 7일 방문한 베를린 터미널에는 우크라이나행 버스가 10대 이상 배정돼 있었다. 유럽 버스 회사인 '플릭스' 직원은 "오후 5시, 8시에 키이우행 직행버스가 있는데 늘 매진"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행의 이유 상당수는 '가족'이었다. 계엄령이 내려진 우크라이나는 남성(18~60세) 출국을 금지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아들, 남편, 아빠를 보고자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이가 특히 많다. 16일 방문한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중앙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안나는 "우크라이나 중남부 드니프로에 아빠를 보러 간다"며 웃었다. 해외 생활을 꺼리고 연로한 까닭에 우크라이나에 남기를 택한 부모를 보러 가는 이도 많다. 트카체바처럼 '비보'를 듣고 여행길에 오르는 이도 적지 않았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를 떠나 해외에서 난민이 된 가족을 만난 뒤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경우도 많다. 바르샤바에서 만난 60대 여성 알라는 폴란드에서 딸을 만난 뒤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전쟁 후 딸은 아일랜드로 떠났어요. 딸이 나를 보러 오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내가 딸을 보러 나왔고 중간인 폴란드에서 만났어요. 딸과 함께 한 5일이 꿈만 같아요." 그는 우크라이나 북동부 격전지 하르키우에 산다. 알라는 "매일 주변 사람이 죽는 곳으로 돌아가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집이니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택하는 이도 많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타향살이의 팍팍함 등을 견딜 수 없어서다. 우크라이나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탈출해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스윗라나는 "가르치던 남학생이 1년 정도 폴란드에 머무르다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때 '가고 싶지 않다'며 엉엉 울던 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가고 싶다고 모두가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베를린 터미널의 우크라이나행 버스 플랫폼에 서 있던 다리야(27)는 "우크라이나행 버스를 기다리느냐"고 묻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어요. 부모님은 도네츠크주(州) 러시아 점령 지역에 살고 있어서 가도 만날 수가 없거든요." UNHCR 조사에서 '방문하고 싶지만 못 했다'고 답한 난민은 40%다. 그 이유로는 '안전 문제'(49%) '자금 부족'(40%) 등이 거론됐다(복수응답).
우크라이나 방문이 수용국에서 받는 혜택의 박탈 또는 축소로 이어질 위험이 적지 않다는 점도 우크라이나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독일의 경우 난민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온전하게 받으려면 최대 3주까지만 여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