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취업 제한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문제 발생의 근본 원인이 '쉬운 해고를 위한 편법'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류센터 노동자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쉽게 사람을 뽑고 쉽게 자르기' 위해 도입한 노무관리 방식이라는 것이다. 쿠팡은 안전한 일터 조성을 위한 정당한 '인사 조치'라고 해명하지만, 언론인·정치인 등도 명단에 포함돼 '비판 봉쇄 목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한노동세상 등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 20여 곳은 20일 오전 '쿠팡 블랙리스트 규탄 인권운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쿠팡은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만6,450명이 등재된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의 물류센터 취업을 영구 또는 일정 기간 제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쿠팡은 "직원 인사평가는 회사 고유 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라며 절도·폭행·성희롱 등 문제적 행동을 한 노동자에 대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쿠팡 물류센터 노동 환경을 취재한 언론인 또는 취재 가능성이 있는 언론인, 노동 실태에 문제를 제기한 노조 간부·조합원 등도 대거 등재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명단에 이름이 오른 당사자인 정성용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블랙리스트의 근본 원인은 '쉬운 해고'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쿠팡 물류센터는 절반 정도는 일용직, 나머지는 쪼개기 계약직으로 이뤄져 1만~2만 명을 매일 채용해야 한다"며 "채용 절차 간소화를 위해 일단 뽑은 다음, 블랙리스트로 해고의 칼날을 편법으로 휘두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식적 절차와 당사자 소명 기회를 거쳐 명단에 오르는 게 아니라, 현장 관리자의 주관적 판단이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혜진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법적인 해고 요건이 엄격한 이유는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하면 노동자의 생존을 쉽게 파괴하고 노동조건 개선 여지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블랙리스트는 쿠팡 노동자 상당수가 일용직, 계약직이라는 허점을 이용해 '매일 해고할 수 있는 조치'를 만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준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동안전부장은 "대우조선해양에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취업 방해를 겪은 하청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며 쿠팡뿐만 아니라 3대 조선업체 등 직장 곳곳에 '블랙리스트 취업 제한 문제'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대책위는 쿠팡 주식회사 및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를 근로기준법 위반 등으로 고발하고, 서울고용노동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다.
한편 쿠팡 측은 명단에 공개된 1만6,450명 전체에 대해 취업 제한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자사 뉴스룸을 통해 "CFS 인사평가 관리 자료에는 불법 행위나 사규 위반 등으로 채용 제한된 사람과 본인 의사에 따라 취업을 원치 않는 사람이 망라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한 "CFS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인사평가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