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축구협회의 '입'

입력
2024.02.20 10:02

"이 모든 일이 농담에서 일어났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남자 대표팀 감독은 최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오게 된 배경을 이 같이 설명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현장에서 파울루 벤투 전 대표팀 감독 후임을 물색 중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만나 '코치를 찾고 있냐'고 농담처럼 물었고, '흥미가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는데, 정 회장이 며칠 뒤 직접 전화해 '매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 회장의 설명과는 정 반대되는 주장이다. 정 회장은 16일 클린스만 전 감독 해임을 발표하면서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여러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벤투 전 감독 선임 때와 같은 프로세스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후보를 61명에서 23명으로 추린 뒤 마이클 뮐러 전 전력강화위원장이 5명으로 좁혀 우선순위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 회장의 말은 '거짓말'이 될 뿐만 아니라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과정을 두고 일었던 그간의 숱한 의혹에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실제 클린스만 전 감독이 취임 기자회견 때부터 정 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해 선임 과정에서 두 사람 간 별도 논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재차 불거져왔다. 이런 와중에 나온 클린스만 전 감독의 폭로는 정 회장과 축구협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무너뜨리기 충분하다.

문제는 축구협회의 대응이다.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전 감독의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자 "두 사람 간 사적 대화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급기야 "그쪽 매체(슈피겔)가 보도했다고 해서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를 우리가 밝히는 것도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고, 굳이 협회가 사실 관계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정 회장이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를 무시하고 클린스만 전 감독에게 직접 연락해 관심을 표명한 걸 두고 과연 '사적 대화'라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 회장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축구협회의 '장'이다. 축구협회는 한국 축구 행정 및 회원 단체를 총괄하는 곳이다. 그런 정 회장이 자신에게 특정 직을 물어오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관심을 표하고, 관련 대화를 사적인 자리에서 별도로 이어갔다는 건 월권 행위에 가깝다.

더욱이 대표팀 선수들의 불화설 보도에는 총알 같이 사실 관계를 확인해주는 것도 모자라 폭로에 적극 가담했던 축구협회가 유독 이 문제에는 "사실 관계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대응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처사다. 지금 축구협회가 해야 할 일은 정 회장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논란이 이는 모든 사안에 무엇이 사실인지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잘못된 점을 하루 빨리 시정해 신뢰를 되찾는 것이다. 선택적 확인과 괜한 발뺌으로는 추락한 신뢰를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

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