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교동의 옛 이름 '솔올'.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란 뜻이다.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야트막한 소나무 언덕 위에 공공미술관인 솔올미술관이 이달 14일 문을 열었다.
솔올미술관은 개관 전부터 '강릉의 랜드마크'를 표방하는 건축 설계로 주목받았다. 빽빽한 소나무숲 한가운데 들어선 흰색 콘크리트 건물은 '백색 건축'의 대가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트레이드마크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그는 2018년 '미투(#Metoo)' 운동 당시 성추문으로 불명예 은퇴했지만, 그가 만든 회사 마이어 파트너스가 건축 디자인과 철학을 담아 솔올미술관을 설계했다.
19일 둘러본 미술관에는 종일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졌다. 건물 전면이 유리로 마감된 덕분이다. 일자로 쭉 뻗은 직선 구조와 순백색 콘크리트가 차가운 인상을 줄 법도 하지만, 자연광이 따뜻한 기운을 더했다.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200여㎡ 규모로 미술관 자체는 크지 않지만, 통창과 건물 곳곳에 설계된 전망대에서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지는 강릉 시내 풍경이 탁 트인 기분을 선사한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로비 천장에 설치된 작품은 개관전을 장식한 현대미술 거장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다. 새하얀 네온 사인과 백색 건물이 한 세트처럼 보인다.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해 우리 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조명한다.' 솔올미술관이 내세운 설립 취지다. 그에 걸맞게 미술관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각각 대표하는 두 개의 전시로 문을 열었다.
'루치오 폰타나:공간·기다림'은 '공간주의'를 창시한 루치오 폰타나의 한국 첫 전시다. 그에게 예술은 2차원 평면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형태, 색, 소리를 공간에 담아내고 관람객의 움직임을 더해 작품을 4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이 공간주의의 핵심이다. 또 다른 전시인 'In Dialog:곽인식'에서는 재료의 물성을 미술로 표현하는 '물성 탐구'의 선구자 곽인식의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두 작가는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의도적으로 함께 배치된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의 연결 고리를 고민해보게 된다.
'강릉의 랜드마크'를 꿈꾸며 야심 차게 개관했지만 운영이 순탄할지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19일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석모(48) 초대 관장은 "강릉시가 어떻게 운영할 건지 공유라도 된다면 적극 도울 텐데 계획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노릇"이라고 성토했다.
솔올미술관은 강릉시 소유 부지에 민간 아파트 시행사가 지어 기부채납하는 형태로 설립됐다. 현재는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 위탁운영하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 강릉시로 운영주체가 이관된다. 그러나 시는 홈페이지 구축 비용을 제외한 미술관 운영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재단은 다음 전시인 아그네스 마틴 개인전이 끝나는 8월이면 미술관 업무에서 손을 뗀다. 계획된 전시는 없으며, 후임 관장도 정해지지 않았다. 9월 이후 미술관 '개점 휴업'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관장이 "대한민국 미술계가 우리 미술관 때문에 들썩이고 있는데 단 한 군데 들썩이지 않는 곳이 바로 강릉시청"이라고 비판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