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상급종합병원(일명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해 19일 집단 사직을 예고한 가운데 이에 동조하는 전공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700명 넘는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고, 일부 지역 대학병원 전공의들도 빅5 병원과 행동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나서서 이들의 집단행동 자제를 촉구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전공의들의 행동을 처벌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며 엄호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18일 한 총리의 담화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담화문은) 의사들의 자율적인 행동을 억압하고 처벌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단체는 "한국 의료를 쿠바식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으로 만들고, 의사를 악마화하면서 마녀사냥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을 격하게 비난하고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 비대위는 전날 비대위 구성 이후 처음 연 회의에서도 "복지부가 전공의 면허박탈 등을 시도할 경우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날 회의에서 비대위는 전 회원 투표를 통해 의협 차원의 집단행동(무기한 파업) 개시 날짜를 정하는 한편, 이달 25일 의협 차원의 규탄대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도 잇따르고 있다. 이날 복지부 집계 결과 16일 오후 6시 기준 23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715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가운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도 23개 병원에 포함됐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사직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103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려 3명을 제외하고 모두 현장에 복귀시켰고, 수련병원에서 수리된 사직서도 없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복지부는 각 수련병원에 전공의들의 근무상황을 매일 보고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의정 갈등의 향방은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예정대로 집단 사직을 결행하느냐에 달린 상황이다. 앞서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박단 회장은 지난 15일 밤 이들 5개 병원 전공의 대표와 만나 협의한 결과, 5개 병원 전공의 전원이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빅5 병원의 전공의 수는 2,745명으로 전체 전공의 1만3,000여 명의 21%를 차지한다.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에 한정하면 그 비율이 30%를 넘는다. 그런 만큼 이들 병원과 보조를 맞춰 다른 수련병원에서도 전공의 사직이 쇄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전공의들도 19일에 '개별 사직' 형태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복지부는 2020년과 같은 선처는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당시 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에 응하지 않은 전공의 10명을 고발했다가 취하했고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도 구제해줬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선처가 집단행동을 쉽게 여기는 의료계 문화를 강화시켰다"며 "정부는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하고, 사후 구제나 선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자 사망이 발생할 경우 업무개시명령 위반 법적 최고형(3년 이하 징역)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5월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의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의사를 제외한 의료인력들은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호사 위주로 구성된 보건의료노조는 "36시간 연속근무와 주 80시간의 과로노동으로 번아웃에 내몰린다면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건 전공의들의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며 "이미 현장에서는 전공의 부족으로 동의서 서명, 동맥혈 가스검사 등 일부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맡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는 정부가 의사 집단행동 강행 시 대책으로 마련한 진료보조(PA) 간호사 활용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