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5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중대재해가 줄어들도록 안전 인력을 확충하고 매뉴얼을 다듬어야 한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가 15일 서울 영등포구노동자지원종합센터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노동·안전·보건 분야 전문가들이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에 따른 정책 보완 방안을 논의했다. 이들은 법의 안착과 사업주의 충분한 대비를 위해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는 "지난달부터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돼 산업재해 수사 인력을 2.5배 수준으로 대폭 증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22년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 사고 발생 건수는 50인 이상 사업장의 1.5배인 335건"이라며 "수사인력 보강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문제임에도 정부는 증원과 관련해 100명에서 133명, 다시 148명으로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대응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하는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중대재해가 일어날 경우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이 검찰에 있어 고용노동부가 정책 리더십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러 부처에 분산된 산업안전 정책을 일원화하고 전문성 축적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산안청 설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입법 취지가 '처벌'이 아닌 '예방'에 있는 만큼 사업주가 중대재해법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박미진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고용부의 안전보건 분야 예산 중 산업재해 인프라 기반 조성에 관한 예산은 겨우 1%"라며 "산업별 유해 요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어떤 예방조치를 수행해야 하는지 사업주들이 알 수 있도록 운영체계를 만드는 데 재정과 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주들의 중대재해법 대응이 '서류상 안전 조치'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변수지 노무법인 약속 노무사는 "사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형식적으로 법 조항을 지켜 중대재해법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소극적 처벌로는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22년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실형 선고가 1건에 그치는 등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법이 의도한 안전조치 강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중대재해법 유예 기간이라는 '골든 타임'을 흘려보낸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박 연구원은 "일터의 안전보건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경영계의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그런데 법 적용을 유예한 지난 2년간 국회와 정부, 재계의 태도는 방관 수준이었다"고 꼬집었다. 권 공동대표는 "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되면 동네 상권이 무너질 것처럼 정부가 공포심을 조장했다"며 "공포 마케팅은 법과 사실 왜곡으로 가득 찬 집단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