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다음 달 20일 방한해 한일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일본 매체의 보도를 두고 일본에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방한 기간 양국 정상이 세계 정상급 야구 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출전하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서울 개막전을 공동 관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정치에 스포츠를 이용한다’, ‘사적인 목적으로 권력을 남용한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일본 TV아사히의 아침 프로그램인 ‘하토리 신이치의 모닝쇼’는 15일 기시다 총리의 방한 및 양국 정상의 MLB 개막전 공동 관람 검토 소식을 다뤘다. 고정 출연자인 다마가와 도오루는 “기시다 총리가 만약 관전할 경우 혼자 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십 명 이상의 수행원이 함께 가면 정말 티켓을 사고 싶은 사람은 살 수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직권 남용’이라며 분노의 글이 잇따랐다. 보통 사람은 관람권을 구하고 싶어도 도저히 구할 수가 없는데 기시다 총리가 외교를 명분으로 오타니 경기를 보는 것은 권력 남용이란 주장이다.
서울 고척돔에서 열리는 이 경기는 멀리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오타니를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얻었다. 하지만 쿠팡플레이가 회원 대상으로 관람권을 독점 판매해 외국인은 사실상 구입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해서든 관람권을 구입하려는 사람을 위해 한 일본 여행사는 미국 MLB 사무국과 계약을 맺고 관람권을 포함한 3박 4일 서울 여행 패키지 상품을 무려 72만8,000엔(약 646만 원)의 고가에 내놓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을 위해 오타니를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기시다 총리는 수개월째 10~20%대의 저조한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지통신이 지난 9∼12일 실시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지난달 조사 때보다 1.7%포인트 더 하락한 16.9%로 나타났다. 주니치스포츠는 “스포츠의 인기에 편승하고 악용하는 짓”, “절대 시구 같은 것 하지 말라. 스포츠를 이용하지 말라”, “진심으로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있다” 같은 분노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편 일본 매체들은 전날 한국과 일본 정부가 모두 기시다 총리 방한설을 부인한 후에도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교도통신,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매체 대부분이 이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셔틀 외교’의 일환으로 다음 달 20일 한국을 찾아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요미우리는 “기시다 총리가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다만 최종 판단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끝까지 보고 나서 내릴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에는 한일 관계에 적극적인 윤 대통령에 비판적인 여론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 방한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을 지원하려는 일본 정부의 애초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