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호킹들, 대학 졸업과 입학을 축하합니다”

입력
2024.02.15 10:06
강남세브란스병원, 루게릭병 등 희소 질환에도 학업을 잇는 13명의 뜻깊은 대학 입학· 졸업 행사 열어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이같은 현수막이 걸린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 중강당에서는 14일 오후 루게릭병 등 희소 질환을 앓는 13명의 대학 입학·졸업생들을 축하하는 뜻깊은 기념 행사가 열렸다. 13명은 모두 사지마비와 호흡장애를 넘어 대학 입학(8명)과 졸업(5명)을 맞았다.

이들은 영국의 저명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처럼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호킹 교수는 근력 약화와 근육 위축으로 사지가 마비되는 루게릭병을 앓았다. 근육병·루게릭병·척수성근위축증 같은 신경 근육계 희소 난치병 환자는 서서히 근육이 퇴화해 온몸 근력이 마비되고, 시간이 지나면 호흡 근육마저 약해진다. 따라서 신경근육계 희소 난치병 환자 대다수는 학업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적절한 호흡 재활 치료를 받으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면서도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호흡 재활’은 희소 질환 자체를 완치시킬 수는 없지만 환자 삶을 향상시키고 수명도 늘릴 수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졸업·입학을 앞둔 학생들과 가족들, 앞서 호흡 재활 치료를 통해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선배들, 송영구 강남세브란스병원 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 김정석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상임이사 외 평소 호흡재활센터와 환자들을 후원해온 여러 기관 관계자들, 그리고 김석훈 홍보대사(배우)와 가수 전지윤씨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권정욱(고려대 자유전공학부 입학 예정·19)씨는 인사말에서 “고난의 순간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고, 더불어 주변의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몸이 불편하다는 제약과 두려움을 넘어서 사회로 나아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김선호(예원예술대 컴퓨터애니메이션학과 입학 예정·19)씨의 아버지 김연준(54)씨는 보호자 대표로 나서 “호흡 재활 치료 덕분에 오늘처럼 기쁜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며 “물심양면 자녀를 돌봐 주신 의료진과 질환을 이겨내고 학업을 이어나가는 학생 여러분 모두를 응원한다”고 했다.

또한 대한호흡기보조기서비스협회에서 졸업·입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개인 미술 작품으로 달력을 만들어 호흡재활센터를 후원한 신수정 강남세브란스 치과병원 교수가 환자들에게 기념품을 선물했다.

2000년에 국내 최초로 호흡 재활 치료를 도입한 강성웅 호흡재활센터 소장(재활의학과 교수)은 “호흡 재활 치료 전에는 인공호흡기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제한된 삶을 살았던 환자들이 치료를 통해 학업이 가능하게 되었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대학 입학과 졸업하기까지 이르렀다. 많은 분들의 따뜻한 후원과 환자 및 가족 분들의 굳센 의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강성웅 소장은 “호흡하기 힘든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학업의 끈을 놓지 않은 환우들의 이야기가 신경 근육계 희소 난치병 환자들을 향한 선입견과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우리 사회의 막힌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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