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재취업 제한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사측 "정당한 인사 관리"

입력
2024.02.14 19:00
6년간 물류센터 퇴사자 1만6540명 명단 관리
쿠팡 "절도·폭행 등 문제 행위 막기 위한 것"
대책위 "문제 제기한 노조원 등 20명 포함돼"

쿠팡이 자사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노동자 가운데 재취업 제한 대상을 정해 명단을 관리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존재 사실이 소문으로 퍼져 실질적인 노동자 통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온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확인됐다는 게 노조와 시민단체 주장이다. 반면 쿠팡은 실체가 없는 주장이며 "인사평가는 회사 고유 권한이자 당연한 책무"라는 입장이다.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14일 서울 서초구 민변에서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법적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 MBC는 블랙리스트로 추정되는 쿠팡 내부 문서 파일을 입수했으며 여기에는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총 1만6,450명이 등재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는 당사자들 증언에 비춰볼 때 명단에 오르면 퇴사 후 일정 기간 또는 영구적으로 재취업이 제한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담겼다.

대책위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해당 문건을 공개했다.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으로 작성된 표 형식의 문서로 △근무지(풀필먼트센터·FC) △근로자 이름 △생년월일 △로그인 아이디 △연락처 △퇴사일(퇴직금 수령일자) △사유1 △사유2 등의 항목으로 이뤄졌다. 문서에는 △작성 시점 △작성 요청자 이름 △작성자 이름도 표시됐는데, 작성 요청자는 쿠팡 본사 또는 물류센터 현장관리자로 보인다고 대책위는 설명했다.

문서의 핵심은 '사유1'과 '사유2'다. '사유1' 항목은 △대구 1센터 △대구 2센터 △-- 로 나뉘는데, '취업 제한 기간'을 암호화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대책위 주장이다. 예컨대 대구 1센터는 '영구 취업 제한'을 뜻한다는 것. 사유2 항목에는 △폭언·모욕·욕설 △도난 사건 △폭행 사건 △스토킹 등 명백한 문제행동뿐 아니라 △정상적인 업무 수행 불가 △안전사고 등 발생 우려 있는 자 △고의적 업무 방해처럼 다소 주관적인 판단이나 △학업 △이직 △육아·가족돌봄 △일과 삶의 균형처럼 비교적 평이한 퇴사 추정 사유도 기술됐다.

쿠팡은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계열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에 '인사평가 자료'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정당한 경영활동이라고 주장했다. 쿠팡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직원에 대한 인사평가는 회사의 고유한 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라고 밝혔다. 물류센터 내에서 성희롱, 절도, 폭행, 반복적 사규 위반 등 행위를 일삼은 일부 사람들에 대해 정보를 확보하고 채용 제한 등 인사에 활용하는 것은 다른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쿠팡은 또 "CFS 인사평가 자료는 MBC 보도에서 제시된 출처불명 문서와 일치하지 않으며, 어떠한 비밀기호(대구1센터 등)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책위와 노조는 쿠팡 측이 재직자가 아닌 퇴사자까지 관리해온 점, 사유는 고사하고 채용 제한 사실 자체를 당사자 모르게 관리해온 점을 문제로 들었다. 아울러 공개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물류센터의 열악한 노동 실태에 문제 제기를 해왔던 20명이 명단에 포함됐다며 부당성을 강조했다. 대책위 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등재 사유 상당수는 구체적 증거를 갖고 사실관계를 확인한 것도 아니고 객관적 기준도 없다"면서 "노동 조건 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블랙(리스트) 대상이 된다고 하면 결국 아무도 말할 수 없는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김병욱 변호사는 "누구든 취업 방해를 목적으로 비밀 기호, 명부를 작성·사용하면 안 된다는 근로기준법 제40조를 위반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노조 간부와 조합원이 상당수 명부에 등재된 것은 노조 활동에 불이익을 주는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으며, 지원자와 퇴직자의 개인정보를 근로계약 외 목적으로 사용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도 주장했다. 앞서 마켓컬리도 일용직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이 불거져 고용노동부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이관했으나, 검찰에서 최종적으로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바 있다.

김혜진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쿠팡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노동자들에게 슬금슬금 흘려서 (노동 환경에 대해) 순응하고 문제 제기할 수 없게 노동자를 침묵시켜왔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향후 △고용부 특별근로감독 요청 △국민권익위원회 비실명 대리신고 △블랙리스트 피해자 집단 소송 △쿠팡 부당행위 공익제보 취합 등 법적 후속 조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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