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이 고통 느낄까요? 동물에게도 감응력이 있습니다" [인터뷰]

입력
2024.02.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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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그래픽노블 '다정한 사신' 발간한 제니 진야 작가 이메일 인터뷰


이미 사람에게 길들여졌는데 속수무책으로 버려지거나 사람의 오락을 위해 고단한 삶을 사는 동물들. 또 환경 파괴로 고통받는 동물들의 삶을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웹툰을 그리는 이가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구독자만 75만4,000여 명에 달하는 제니 진야 작가다. 그의 웹툰을 모은 단행본 '다정한 사신'(Loving reaper)이 독일, 벨기에, 프랑스, 브라질에 이어 최근 국내에도 발간됐다.

진야 작가는 13일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생각보다 동물이 처한 현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며 "(웹툰을 통해) 이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동물은 사람과 같이 두려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응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받아야 한다"며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도 적어도 그들에게 잔인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야 작가가 그리는 웹툰의 특징은 숨이 멎을 때까지 동물들의 옆을 지키다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사신(死神)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사신은 동물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더 이상 길을 잃거나 잊히지 않는 곳, 외로웠던 동물에게 친구가 생기고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곳으로 동물을 이끌면서 위로해주는 존재다.

독일 태생인 진야 작가는 독일에 벨츠멜츠(Weltschmerz)라는 표현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이나 무능함에 대해 느끼는 고통스러운 우울감을 뜻한다"며 "우리는 수많은 끔찍한 일을 보고 듣지만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이어 "다정한 사신의 첫 에피소드이기도 한 가족을 기다리는 유기견을 바라보며 이를 느꼈다"며 "매년 수백만 건씩 일어나는 동물학대를 보며 동물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진야 작가는 처음부터 동물 웹툰을 그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를 전공한 그는 다양한 주제를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그림과 동물, 환경을 접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중 보호자로부터 버려진 개의 에피소드를 SNS에 올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반응이 뜨거웠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동물 웹툰을 그리게 됐다.

이번에 발간된 다정한 사신에는 버려진 유기견, 오해로 인해 고통받는 검은 고양이, 학대받는 앵무새, 화재로 인해 멸종 위기에 몰린 코알라 등 반려동물 유기부터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에 걸친 22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특히 한국판에는 철창에 갇힌 채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육곰과 야외에서 방치된 채 길러지는 마당개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각 이야기 끝에는 현실에서 위기에 처한 해당 동물에 관한 사실이 요약돼 있다.


진야 작가는 헝가리 보호소에서 입양한 개를 키우는 반려인이기도 하다. 그는 "유기동물을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문구를 지지한다"면서도 "이만큼 중요한 것은 끝없는 생산과 비극을 막기 위해 떠돌이 동물을 중성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한국의 사육곰 산업과 마당개 문제에 대해서도 일침 했다. 그는 "사람 몸에 좋다는 담즙의 경우 이와 같은 효능을 가진 성분이 이미 개발돼 있다"며 "누구도 그들을 학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당에서 개를 키우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면서도 "날씨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방치하는 것, 사회적 동물임에도 이들을 소외시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진야 작가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독자들의 지지다. SNS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피드백도 다양하고 빠르다. 그는 "전 세계로부터 다양한 나이대의 독자들로부터 메시지를 받는다"며 "웹툰을 통해 그들의 슬픔이나 분노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했다. 이어 "이 같은 경험을 공유해준다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며 "웹툰이 많은 이에게 동물,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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