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총선에서 부패 혐의로 투옥돼 있는 전직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최다 의석을 확보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런데 승리한 쪽에서 오히려 '부정 선거'라고 반발하며 항의 시위에 나서는 예상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더욱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는 탓에 정부 구성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 후폭풍이 불가피한 터라, 파키스탄 정국은 당분간 혼돈의 나날을 보내게 됐다.
1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프랑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현재 수감 중인 임란 칸 전 파키스탄 총리의 지지자들은 전날 수도 이슬라마바드 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투표가 조작됐다"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의 최루탄 발사 등 강경 진압에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남부 도시 카라치에서도 시위대 여러 명이 구금됐다.
이에 앞서 파키스탄 선관위는 지난 8일 치러진 총선 결과, 칸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정의운동(PTI) 출신 무소속 후보들이 전체 하원의원 266석 중 101석을 얻었다고 11일 최종 개표 결과를 발표했다. 부정부패 혐의로 수감된 칸 전 총리가 선거에 나서지 못한 데다, 정부가 PTI의 정당 상징을 금지한 탓에 그의 지지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도 최다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반면 군부 지원으로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파키스탄무슬림연맹-나와즈(PML-N)는 75석만을 확보, PTI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 전 외교장관이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PPP)도 54석에 그쳤다.
'총선 승리' 진영이 이례적인 항의 시위에 나선 건 당국의 투표 조작으로 50석가량을 빼앗겼다고 본 탓이다. PTI 측은 정부가 PML-N 지원을 위해 선거 당일 인터넷을 차단하고, 개표도 더디게 진행했다고 의심한다. 가디언은 "실제 획득한 의석수는 150석 이상이라는 게 PTI의 주장"이라며 "투표 집계·기록 과정에서 (정부가) 조직적으로 조작했다면서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하르 알리 칸 PTI 의장은 지지자들에게 "평화로운 방식으로 선거 조작에 항의하자"며 시위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이 와중에 혼란을 수습할 '새 정부 구성'은 첩첩산중에 빠질 전망이다. 과반 의석 확보 정당이 없어 구심점은 없는 상태다. 칸 전 총리의 PTI 진영은 최다 의석을 확보했지만, 무소속 후보들의 당선이라 정부 구성 권한이 없다. 샤리프 전 총리의 PML-N은 형식적으로는 '원내 1당'이 됐으나, 민심에선 2위로 밀려난 꼴이라 선거 승리를 주장할 명분을 얻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선거로 드러난 민의를 존중해 칸 전 총리 측 인사들을 차기 정부 구성에 참여시켜야만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샤히드 카칸 압바시 전 파키스탄 총리는 가디언에 "이번 선거로 (정부의) 정당성은 심각한 의심을 받았다"며 "군부가 수용하지 않겠지만, 정당성을 얻을 유일한 방법은 칸 전 총리를 (새 정부 구성 논의에)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총선은 '정당한 냉소주의'의 결과"라며 "(군부의) PTI 억압을 보고 (국민이) 집결한 결과"라고 짚었다. 비영리 인권단체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오마르 워라이치 특별고문은 WP에 "(PTI 진영의 승리는) 놀라운 저항의 표시이자 강력한 군부에 맞서는 평화적 반란"이라고 평가했다.